보름달에 소원은 비셨는지, 비는 맞지 않으셨는지, K장녀 여러분들 가족과의 사이는 여전히 평안하신지 먼저 문안 인사 여쭙니다. (사실 저는 싸웠어요 하하) 하지만 추석은 다른 것 보다 먹을 것이 많은 명절이죠. 해외에서는 추석을 코리안땡스기빙(추수감사절)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워낙 과일이며 곡식이 익어가는 계절이니까요. 송편도 먹어야 하고, 동그랑땡이며 산적, 계란물 입혀 부쳐낸 전도 좀 먹어주고 해야 명절답지 않나...싶어집니다. 

손질이 끝난 멸치는 센불로 달군 마른 팬에 덖어서 남은 습기를 날려줍니다. 비린내가 약간 고소한 냄새로 변하면 넓은 쟁반에 펴서 식혀줍니다. 뭉쳐두면, 애써 덖으면서 날린 습기가 다시 스며들기 마련이거든요. 잘 볶아진 멸치에서는 정말 꼬순내가 납니다. 국물멸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꼬순내에 어울리는 것은 맥주와 고추장 아니겠어요? 아 저는 안먹었는데, 생각이 그렇게 나더라고요. 달달한 고추장에 고소한 멸치...시원한 맥주...🍺+🔥=💖 

이 친구들은 이제 제 찬장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게 될거에요. 속이 기름진 날에도, 술에 취한 날에도 저와 함께하는 따수운 국물이 되어줄 친구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멸치가 집에 없었던 지 한 달 쯤 되었었거든요. 멸치 하나만 없을 뿐인데 왜이렇게 헛헛하던지. 이번에 채워놓은 멸치 곳간은 1년 정도는 든든할 것 같아요. 

그리고 모여든 멸치를 조심스럽게 떠내죠. 죽방렴까지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지만, 죽방렴 안쪽은 꽤 얕아서 사람이 그냥 들어가도 물이 허리 아래까지밖에 차지 않더라구요. 어망에 걸린 멸치를 털지 않으니까 멸치 비늘이 상하지 않아요. 여기서 생산된 멸치를 바로 ! 죽방멸치 ! 라고 부릅니다. 생산량이 적고, 몸의 비늘이 워낙 온전하다보니까 마른 상태에서도 빛이 납니다. 그래서 죽방멸치는 값이 비싸죠. 오늘의 레터 가장 앞에 있는 생생한 멸치 사진이 바로 죽방렴에서 만났던 멸치들입니다. (아, 제가 첫 명절 선물로 받았던 죽방멸치도 알고보니 바로 이 곳에서 잡힌 멸치였어요. 맛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라구 소스 만들기의 마무리가 파스타였다면, 멸치 손질의 마지막은 멸치국수입니다. 이날 멸치 손질하느라 허리가 좀 아팠는데, 그래도 멸치국수 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색다르게, 음료가 아니라 추천메뉴입니다! 멸치국수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는데, 의외로 파인다이닝입니다.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밍글스인데요, 추가 메뉴에 있는 GUKSU가 바로 멸치국수랍니다. 이곳에 가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꼭 멸치국수를 먹게 됩니다. 파인다이닝에 어울리는 메뉴가 아니지 않나? 싶지만 정말 깊고, 깔끔하고, 진한 멸치육수에 아주 얇은 소면, 작은 생선 튀김 한 조각과 애호박 나물이 올라간 이 멸치국수는 정말 멸치국수의 이데아 랄까요. 

🌰 원래는 밤이 나오는 9월 말 즈음 해서 마롱글라세를 만듭니다. 밤의 결을 살려내며 껍질을 깐 후, 10~14일 동안 시럽에 담가 천천히 맛을 들이는 프랑스의 과자에요. 쫀득한 식감의 밤을 베어물면 바닐라 시럽이 느껴지는, 그런 호화로운 과자죠. 친구들이나 지인들 선물 용으로 만들었는데, 사실 그래서 오늘의 레터 주제도 밤으로 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올해는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힘도 들고, 왠지 올해는 해야한다는 FEEL이 오지 않네요. 작년에 마롱글라세를 만드는 과정을 매일 써서 보내는 레터를 짧게 발송했었는데, 이 레터 아카이브를 여러분께 공유할까 해요. 노션 페이지에 댓글을 달 수 있게 해두었으니 혹시 관련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 <마롱글라세 만드는 게으른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