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리즈들이 끝이 날 때면 주체할 수 없이 울어버리곤 합니다. 제가 넷플릭스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시리즈인 포즈(POSE)의 마지막 시즌이 지난 달 업로드 되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는 센스8이에요!) 업로드 되자마자 보고싶었는데, 너무 좋을 것을 알아서 미루다가 9월의 마지막 날에 보았습니다. 

포즈는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뉴욕 할렘가의 무도회장(Ballroom), 에이즈로 인해 많은 사람을 잃어야 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웠던 유색인종 퀴어(que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총 3개의 시즌으로 이루어진 드라마인데, 도대체 뭐라고 쉽게 요약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정말 복잡하고, 아름답고, 눈물나게 슬픈 이야기들이 담겨있거든요. 이 얘기만도 3박 4일로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오늘은 조금 진정하고, 제가 가장 짚어내고 싶었던 부분에 집중해볼게요.  

포즈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80~90년대 뉴욕 할렘가의 무도회장(Ballroom)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요? 당시 비백인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들은 사회의 배척을 받는 존재였어요. 그들이 모여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바로 무도회장이었습니다. 이들은 새벽에 몰래 모여 여러가기 주제를 놓고 춤을 추고 대결을 했어요. 이 문화 속에서 발전된 것이 바로 왁킹과 보깅입니다. (어쩐지 여러모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스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무도회장은 화려합니다. 그들이 매일같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과는 다르게, 화려하고, 다채롭고 아름답습니다. 그 누구도 서로의 존재에 의심을 품지 않고 오직 춤과 음악, 그리고 퍼포먼스만이 눈을 사로잡아요.  처음에는 이 퍼포먼스를 구경하는데에만 온 신경을 빼앗겼었어요. 제가 몰랐던 화려함, 제가 알 수 없었던 시대의 이야기와 패션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드라마의 마지막에서 엘렉트라가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하우스’에 흥미를 잃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왜 여전히 ‘하우스’ 무도회에 집착하냐고. 그러자 블랑카는 말합니다. "가족에 흥미를 잃을 수는 없잖아요."

포즈를 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좋을 때도, 슬플 때도, 힘들 때도, 심지어 싸웠을 때 조차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습니다. 한국에는 식구(食口)라는 말이 있죠. 말그대로 한 집에 살면서 밥을 함께 먹는 사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한다면, 포즈의 주인공들은 의심할 데 없는 가족일거예요. 

새삼스럽게, 호박죽을 통해 제가 그래도 어떻게든 사랑받아왔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물론 외할머니는 1년에 몇 번 만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만큼은 많이 사랑받았었군요. 제 그릇 앞에 놓아주시던 가시를 바른 갈치살, 잣이 많이 들어간 고소한 잣죽, 제가 가면 늘 내주시던 할머니 스타일의 밀가루 반죽이 적은 부추전까지. 그리고 역시 맛있는 것을 먹이는 방식으로 사랑받았었네요 저 😂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도 누군가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맛있는걸 만들어 먹이는 걸까 싶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혼자 살고요? 저는 음식에 있어서는 한없이 한없이 부지런하고 창의적인 사람이라서! 겁도 없이 늙은 호박을 구하고 말았습니다. 이미 떠올리고 말았는데, 모른체 할 방법은 없거든요. 완도에서 자란 호박이래요. 2kg면 그래도 작겠지? 했는데 생각해보니 저희 집 개가 2.4kg이었습니다. 대충 비슷한 크기였다는 뜻이죠. 늙은호박은 단호박보다 조직이 성글어서 손질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니까, 작은 장점에도 기뻐하면서 호박을 갈랐습니다.

왜 맛있는거 혼자 먹냐고 하실 분들을 위해, 레시피도 함께 소개할게요!

오늘은 혼자 앉아 호박죽을 먹었습니다. 제가 끓여서 그런지 역시 맛있었습니다 😉 역시 못하는게 없어요! 남은 호박은 어떻게 먹을까 지금부터 고민을 좀 해봐야겠지만, 뭐, 내일의 김나영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언젠가는 꼭 이 호박죽을 제가 선택한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되기를 꿈꿔보았어요. 포즈의 주인공들처럼, 포즈의 가족들 처럼. 오랜 시간 함께, 수많은 식사를 할 수 있게 되길. 큰 냄비에 호박죽을 끓여서 테이블 위에 놓고, 각자 원하는 만큼 덜어 먹으면서 온갖 이야기들을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자랑스러워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손을 잡아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이상 외로운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호박죽을 먹고싶은 가족이 생기길, 함께 기도할게요. 그런 날이 오면 꼭 같이 호박죽 먹어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