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특별한 레터로 여러분께 인사를 건네요. 그런데 오늘의 특별함은 이제 메뉴가 아니라! 소개합니다 전격 사진 없는 레터!

사실 제게 요리중에 사진을 찍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제게 요리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에 더 가깝기 때문이에요. 저는 레시피를 읽으면서 천천히 요리를 머리속으로 그려보거든요. 레시피를 읽으며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그렇게 머리속에서 한 번 그림으로 요리를 완성하고 나면 사실 레시피를 계속 찾아 읽지 않아도 됩니다. 제 스타일대로 변형하는 것도 쉽고요.

고등학교에서 요리를 배울 때, 첫 해에는 선생님이 모든 과정과 플레이팅까지 보여주세요. 저희는 따라하기만 하면 되죠. 그 다음 해에는 과정만 보여주세요. 40명의 학생이 한 반이었으니 수업이 끝나면 40개의 플레이팅이 나와서 교실을 한 바퀴 돌면서 서로의 플레이팅을 구경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해에는, 선생님이 레시피를 설명만 해주세요. 아주 새로운 기술이 있을때만 시연해주시고요. 그럼 정말 40개의 다른 음식이 탄생합니다. 각자의 창의성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죠. 저는 그런 과정을 거쳐 요리를 배웠고, 그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어요.

몇 줄로 요약된 레시피보다는 조금 더 상세하게 묘사해낸 이번 레터를 천천히 따라가며 머리 속으로 이 요리를 상상해보고, 각자의 마음 속으로 완성한 요리가 실제의 요리와 얼마나 다른지 보는 것이 이 레터의 목적인데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과 협업해서 그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았어요. 아주 간단한 요리지만, 여러분에게 신선한 기쁨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어떤 작가님과 함께했는지, 글 마지막에 공개됩니다! (그림 보자마자 소리지르실 분 분명 있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읽어주세요 🧡

늦은봄의 끝자락, 그리고 여름이 시작되든 지점에 맞물려있는 식재료가 완두콩입니다. 완두콩이 시장에 나오면 아 여름이 이제 근처에 왔구나, 싶어지죠.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그렇듯 저는 콩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요 완두콩만큼은 예외입니다. 저 어릴때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위에 완두콩을 서너알 올려줬거든요?

요즘은 그런 곳을 찾기 어려워졌지만요. 그 완두콩을 너무 좋아해서 소중히 아껴두었다가 가장 마지막에 먹는, 그런 애였어요 저는. 그래서 아직도 여름에는 완두콩을 엄청 넣은 밥을 해먹습니다. 그런데 완두콩을 먹는 다른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달달하게 졸여낸 완두배기 정도? 사실 그것도 떡의 부재료로 쓰이는 것이지 그대로 먹는 일은 잘 없으니까요.

해외에서는 이 완두콩을 정말 다양하게 먹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구워 고기 요리 가니시로 곁들이기도 하고요, 버터에 달달 볶기도, 파스타에 넣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은 파스타에 자주 넣어요. 1년에 한 번은 큰 망의 완두콩깍지를 사서 넷플릭스를 보며 우르르 까버리고, 반은 그 주에 다 먹어버리고 반은 냉동을 합니다. 그렇게 연중 완두콩 요리를 먹고 있지만 사실 가장 맛있는 것은 콩깍지 째 소금물에 데쳐 까먹는 것입니다. 간간하니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여하튼간에 그래서 이번 레터에서는 완두콩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완두콩 요리로 무엇을 할까, 파스타를 할까 수프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역시 봄의 가벼운 샐러드가 좋지 않겠나 싶어 완두콩 샐러드를 만들어볼까 해요.

요즘 날씨가 더워지잖아요. 약간 상큼하고 시원한 메뉴가 되었으면 해서 기본적으로는 올리브오일과 레몬즙으로 만든 드레싱을 선택할까 해요. 해외에서는 완두콩이랑 민트를 많이 매칭하더라고요! 민초단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민트를 요리에 넣어본 적은 많지 않은 것 같아서, 시원함을 살릴 수 있는 허브로 민트를 선택하기로 했어요.

완두콩만 넣기는 심심하니까, 이 계절에 맛있는 아스파라거스를 좀 넣어볼까요? 예전엔 아스파라거스는 100% 수입인줄 알았는데, 몇 년 전에 강원도에서 아스파라거스 해외 수출 판로가 막히며 국내 판매를 시작했을 때야 국내에도 이렇게 좋은 아스파라거스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게되었고, 이제는 왠지 아스파라거스도 봄 나물 계열로 넣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져요. 저도 올해 철원에서 온 아스파라거스를 사두었습니다.

이 메뉴의 이름을 붙여보자면…이탈리아에서는 봄의 샐러드라는 뜻의 ‘인살라타 프리마베라(Insalata Primavera)’라고 부를 것 같고요, 음 미국에서는 초록이 한가득이라는 뜻의 ‘그린 플러쉬(Green Flush)’라고 부를 것 같아요. 이런거 보면 나라마다 계절감이 조금 다른가봐요. 유럽에서는 완두콩이 봄의 무언가인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여름의 무언가거든요. 요리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많답니다. 오늘의 요리, 각자 어떻게 부르고 싶으신가요? 혹 이 메뉴를 만들어보신다면 요리 이름도 새롭게 붙여보세요!

일단 완두콩은 깍지 채로 되어있는 것을 사서 살살 벗겨줍니다. 꼭지를 딴 후에 살짝 누르면 톡 하고 배가 터져요. 이미 빵빵하게 불어 있기 때문에 쉽게 터지고, 손가락으로 완두콩들을 훑어서 볼에 담아줍니다. 매끈한 완두콩들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그릇 위로 떨어집니다.

아스파라거스는 양끝을 잡고 뚝 꺾어줍니다. 톡 소리가 나며 끊어질텐데요, 아래 쪽의 단단한 줄기 부분 바로 위입니다. 미련없이 아래 쪽은 버려주시고, 나머지 부분은 3cm길이로 썰어주세요. 팬을 달군 후, 올리브오일을 넉넉히 두르고 아스파라거스를 볶아줍니다. 아스파라거스들이 팬 위에 떨어지자마자 지글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젓가락으로 계속 훑어가며 볶아주다 먹음직스러운 갈색이 됐을 때 소금 한 꼬집을 솔솔 뿌려준 후 넓은 그릇에 펴서 식혀줍니다.

민트를 손질해볼까요? 스피아민트 애플민트 페퍼민트 등 다양한 민트가 있는데, 스피아민트의 민트향이 조금 더 날카로운 느낌이에요. 애플민트에는 달달한 사과향이 있고요. 저는 오늘 애플민트를 쓰려고 해요. 제가 가진 올리브오일에는 가벼운 매콤함이 있는데, 애플민트의 단 향이 그 맛을 둥글게 해줄 거거든요. 민트는 줄기에서 잎만 똑똑 따낸 후에 거칠게 다져줍니다. 한 팩을 전부 넣어도 좋습니다. 

몇 년 전 레몬딜버터가 트위터에서 엄청 유행을 타면서, 조금은 친숙한 허브가 된 딜도 넣어줍니다. 딜에는 박하 계열이랑은 조금 다른 시원하고 화한 향이 있는데, 여름과 정말 잘 어울리는 맛이거든요. 허브가 좀 많지 않나? 싶을 정도로 듬뿍 넣어줄 수록 맛있답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뒤져보니 저번에 다른 요리에 쓰고 남은 프로슈토가 두어장 남았길래 그것도 설렁설렁 다져 넣었습니다. 프로슈토가 감칠맛이랑 짠맛을 더해줘서 파스타나 샐러드에 쓰면 딱 좋거든요! 아스파라거스와 햄은 워낙 잘 어울리는 조합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완두콩을 데쳐낼 물을 끓입니다. 물이 끓어오르면 소금 2T를 넣고, 완두콩을 우르르 부어줍니다. 1~2분 후 완두콩의 색이 한결 진해지면 체에 받쳐 걸러낸 후 찬물에 충분히 씻어내줍니다. 충분히 식혀야해요. 안그러면 완두콩이 금방 쪼글쪼글해지거든요. 너무 오래 밖에 두고싶지 않고 달달할 때 즐기고 싶어서 완두콩을 가장 나중에 삶았어요. 체에 받쳐 물기를 어느정도 제거한 후 아스파라거스가 있는 그릇에 민트, 채썬 프로슈토와 함께 부어줍니다.

이제 드레싱을 아스파라거스와 완두콩이 있는 그릇에 부어줍니다. 큰 숟가락 두개로 섞어주세요. 모든 채소와 허브에 드레싱을 코팅한다는 느낌으로 아래서 위로 퍼올려가며 섞어주시되 너무 힘을 주지는 마세요. 채소를 상하게 하지 않는 여전히 부드러운 손길이 중요합니다. 채소가 다치면 맛이나 향도 약해지고 샐러드가 질척해지거든요. 드레싱의 맛과 향을 충분히 입혀준다는 마음으로. 잘 섞이고 나면 그릇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기름 코팅이 되어 반짝입니다.

한 입 떠서 먹어보세요. 소금이 더 필요하지는 않은지, 후추를 살짝 넣고 싶지는 않은지. 소금과 후추는 정말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자신의 혀를 믿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저는 단계별로 소금을 충분히 넣어두어서 괜찮은 것 같아요. 이제 마무리해볼까요?

샐러드가 워낙 밝은 초록색이니까, 흰 그릇을 골랐습니다. 샐러드를 넓게 펴 담아두고, 생모차렐라 치즈를 손으로 툭툭 찢어 올렸습니다. 탄수화물을 넣을까, 단백질을 넣을까 하다가 둘 다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하하하 저답죠. 덕분에 아주 샐러드를 고봉으로 만들었다는 후문...

너무 채소만 있으면 포만감이 없으니까요! 저는 부라타를 좋아하지 않아서 식감이 어느정도 있는 생모차렐라를 골랐습니다. 탄수화물로는 휘뚜루 마뚜루 퀴노아를 삶았는데, 사실 물을 조금 적게 잡고 압력밥솥으로 지은 현미밥도 좋아요. 퀴노아는 넓게 편 후에 냉동실에서 후다닥 식힌 후에 완두콩과 섞었어요!

산미가 있는 음식은 뜨뜻미지근하면 맛이 없거든요. 뜨겁거나, 차갑거나 둘중에 하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위에 레몬제스트와 올리브오일을 가볍게 올려줍니다. 레몬제스트는 레몬 1/4개 분량, 올리브오일은 1T 미만으로 가볍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