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위염이 찾아왔어요. 제가 최근에 거의 잠을 못자고, 쉬지도 못했거든요. 외부 일정도 많았고, 마감도 많았습니다. 몇 개의 큰 프로젝트 마감이 겹치면서 거의 숨도 못돌리고 일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은 다 공간 프로젝트였는데요, 제가 제작물 관련 부분과 홍보쪽을 디렉팅한 터라 더더욱 정신이 없었어요. 나갈 현장이 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슈더라고요....정말로요. 이정도 일했으면 다 알지 싶었는데 막상 일에 돌입하고 나니 모르는 것 투성이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배울게 정말 많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 지난 몇 달이었어요.

이 메일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저는 현장에 있습니다. 오늘도 정말 숨가쁘게 바빴네요. 위염에 걸린 것도 무리가 아니긴 하네요. 진통제와 위염 약을 먹으면서 하루를 겨우 버텨냈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새벽 2시에나 집에 돌아오는 스케줄로 이미 며칠을 살고 있는데, 심지어 앞으로 5/10까지 지방 출장으로 쉴 시간이 없거든요. 집에서 요리를 할 시간도 없고, 정말 지옥주간을 지나는 중이에요.

사실 그래서 레터를 그냥 스킵할까 고민끝에 보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었어요. 하지만 이것도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쓰기로 했습니다. 돈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잠을 조금 줄이고, 요리를 하고, 글을 쓰기로요. 다른 때 보다 레터가 짧아도 이해해주세요. 

  와중에 친구가 집에 부러 들러서 취나물과 두릅을 한봉다리 주고 갔지 뭐에요. 늦은 시간이었지만 신문지로 싸인 취나물을 열어보니 향이 얼마나 좋던지 혼자 주방 바닥에 앉아 킁킁댔습니다. 서있을 힘도 없었어....

솔직히 정말정말 힘들었고 위염때문에 속도 너무 쓰렸는데, 아침에 죽이라도 챙겨먹자 싶어서 새벽에 눈을 떠서 죽을 끓일 재료를 막 뒤져보았어요. 

  생각해보니까 취나물이 잇자나...? 취나물이나 달래 처럼 향이 좋은 나물을 넣은 된장죽이 맛있거든요. 후다닥 끓여보자 싶어서 일단 취나물과 쌀을 꺼냈습니다. 취나물을 한 줌 꺼냈는데 정말 연하고 향이 좋네요. 마트에서 산 것과는 달랐습니다. 물을 끓이는 동안 잎만 똑똑 땄어요. 잎을 따니까 향이 더 좋아져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그래, 사람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끓는 물에는 소금을 넣고, 취나물을 빠르게 데쳐냈습니다.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짧게 데치고 찬물로 씻어서 물기를 꼭 짰어요. 취나물은 데치고 나면 그 까끌까끌한 촉감이 약간 더 살아납니다. 생취나물일때는 솜털이 난 것 같은 느낌으로 보송하니 까끌한데, 데치고 나면 그 촉촉하게 꺼끌~해요. 은근한 사포같은 느낌....그 느낌이 좋죠. 취나물은 그래야 맛있어요.

취나물을 적당한 크기로 썰었습니다. 너무 다지지는 않고요. 식감이 좀 있는게 좋더라고요 저는. 취나물을 썰다 보니 음 역시 단백질이 조금은 있는게 좋겠지 싶어서 냉동실에서 손질해둔 새우를 꺼내 썰었습니다. 솔직히 녹이기도 귀찮아서 그냥 냉동인 채로 썰어버렸어요. 새우도 너무 잘게 썰지는 않았고요.

취나물을 손질하는 동시에 쌀도 씻어 찬물에 담가 불리기 시작했더니 새우와 취나물을 손질할 즈음 되니까 충분히 잘 불었더라고요. 물을 먹어 불투명하게 변한 쌀알들이 다글다글하니 귀엽죠. 조금 더 불리면 좋겠지만, 솔직히 귀찮을 때는 이정도만 되어도 감지덕지입니다. 저는 생쌀로도 그냥 죽 할 때 있어요. 어차피 끓이면서 물 먹을건데 앞에 먹이냐 뒤에 먹이냐의 조삼모사 아니냐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참기름에 새우를 먼저 볶았습니다. 그사이에 좀 녹기도 했으니까 괜찮을거에요. 새우를 달달 볶다가, 체에 받쳐 물기를 제거한 쌀을 넣었어요. 쌀을 볶을 때는 들기름을 넣고,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볶았습니다. 쌀알이 적당히 볶아졌다 싶을 때 물을 넣으면 되는데요, 그냥 물 대신 냉장고에서 죽어가고 있던 콩나물국 국물을 넣었습니다.

지난번에 아는 분들을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나서 남은 콩나물국이 있었거든요. 사실....그날 세 분을 초대하고 솥밥이랑 같이 드리려고 콩나물국을 한 냄비 끓여두었는데요? 정신없이 먹고 떠들다가 그 콩나물국의 존재를 까먹고 말아버린 모자란 자 😂  손님들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아채고 만 것이죠. 그래서 그 콩나물국을 하염없이 먹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라도 상하기 전에 쓸 수 있으면 다행이죠 뭐.

육수를 넣은 후에 바로 된장을 풀었어요. 손 뜨거우니까 불은 끄고 된장을 챱챱 풀었죠. 국이 아니라 죽이니까 건더기가 없는 편이 좋겠다 싶어서 귀찮지만 체에 받쳐 풀었습니다. 슬슬 된장을 풀고 다시 뚜껑을 덮어 약불로 천천히 죽을 익혔습니다.

죽이 익어가는 동안 현장에 나가느라 못한 마감이나 컴퓨터로 해야하는 작업들을 처리하고요. 정신없이 몇 가지 일을 또 쳐내다 보니까 집에 된장 냄새가 솔솔 나는 것이. 위염인간이지만 배가 고파왔어요. 역시 죽이라도 끓이길 잘했다.

죽이 익는 것은 참 금방입니다. 단단했던 쌀이 퍼지고, 소화하기 좋은 부드러운 상태가 되는 동시에 국물에도 전분질이 녹아나 차르르 한 식감이 나야 제대로 된 죽이죠. 물이 어느정도 줄어들고 나면 눌어붙기 쉬워서 계속 붙잡고 저어줍니다. 마지막으로 물이 졸아들어 쌀알에 완전히 감기도록요.

저는 오늘 통쌀을 사용했는데요, 사실은 쌀을 조금 다져서(?) 사용해야 해요. 그래야 쌀 덩어리가 더 작아서 소화가 잘 되니까요. 쌀을 어느정도 다지냐에 따라 죽/미음/응이 로 나뉘어지는데, 죽은 통쌀+가볍게 다진 쌀로 만든 죽을, 미음은 죽을 체에 내려 건더기가 없도록 한 것, 그리고 응이(의이)는 전분가루를 쑨 것이라고 해요. 

데쳐놓은 취나물은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넣습니다. 취나물 향은 오래 익히면 날아가거든요. 취나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향채들은 가열을 하면 향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생으로 먹거나 오래 조리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죽이 완성이 되면 불을 끄고, 취나물을 넣고 휘휘 섞은 후에 뚜껑을 덮어 2~3분 정도 두어 향이 배도록 합니다. 밥 뜸을 들이듯이요. 뚜껑을 열면 된장 냄새 사이로 취나물 향이 화아 하고 피어납니다. 봄의 죽이네요. 다시 한 번 뒤섞은 후에 그릇에 담았습니다. 

쌀과 물로만 끓인 맨죽이 물론 속에 더 좋겠지만, 된장이 들어간 이 죽도 저는 참 좋았습니다. 된장 덕분에 간을 추가로 맞추지도 않았고, 삼삼하니 심심한 느낌도 없었달까요. 기름기가 없어서 이따금 고깃집에서 나오는 된장죽이랑은 또 다른 담백함이 있습니다.

예전엔 혼자 있을 때 아프면 그렇게 서러웠는데. 요즘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의연하게 죽을 끓입니다. 내가 내손으로 나 먹을 죽을 끓인다는게 싫을 때도 있었는데요. 이제는 별 생각도 없습니다. 서러워봐야 뭐하겠어요. 그렇다고 누가 와주는 것도 아닌데요. 약이나 잘 챙겨먹자.....죽 맛있고 든든하게 챙겨먹고 약 먹고, 바나나민트 향의 겔포스같은 것을 먹으며 출근 준비를 마쳤습니다.

아니 근데 도대체 어떤 이상한 사람이 약을 바나나 민트 향으로 만들기로 다짐한걸까요? 도대체 왜 저런 이상한 본데없고 난데없고 심지어 맛있지도 않은 조합을? 저는 심지어 엄청난 민초단인데 저것만큼은 용서할 수 없었어요. ㅎㅏ 진짜....구독자님은 과로 하지 마시고, 위염도 걸리지 마세요. 안그러면 저처럼 바나나민트'향' 약을 먹는 고문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아프지 않아도 죽을 끓여먹는! 본죽에 가는 일을 좋아하는! 죽 러버인데요? 죽을 정말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대학교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심지어 수능날도 본죽에서 죽 사간 사람 🤣  죽 소화 잘 시키고 수능도 잘 봤답니다. 오늘도 tmi 대잔치~

쌀 1/3컵

취나물 1줌

소금 1t

새우 2~3개

물 3컵

된장 1/3t

참기름 + 들기름

쌀 대신 밥을 넣어도 좋아요. 찬밥으로 할 때는 볶는 과정을 생략해도 되고 시간도 훨씬 덜 듭니다. 밥을 이용할 경우에는 새우를 볶은 후에 불을 끄고 물과 밥을 넣고 잘 풀어주세요. (물의 양은 쌀의 4~5배로 잡아주세요) 그 후에 다시 레시피를 따라가면 됩니다. 된장의 향이 강하다기 보다는 은은한 된장향이 나는 정도라서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메뉴이니 어느 아침에, 또는 어느 밤에 시도해보시기를 바라요.

오늘의 추천코너는 쉬어갑니다...정말 기력이 없어....위염 다 나아서 다음주엔 상큼한 초여름 맛으로 돌아올게요. 그리고 다음주에는!!! 엄청난 콜라보가 있다는 사실!! 제가 진짜 꼭 하고싶었던 기획인데요! 기대해주셔라 구독자님도 정말 좋아하실거에요.

아 그리고 다들 아프지 마시고요. 이렇게 4월의 두 번째 레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