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중간, 황태해장국 먹고 갈래요?

플러팅은 아닙니다만은😗

2023. 8. 12.

8월의 중간, 황태해장국 먹고 갈래요?

태풍이 지나간 주말입니다. 태풍 전날의 하늘이 참 아름다웠어서 기억에 남아요. 창밖으로 계속 하늘을 내다보면서 힘있게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습니다. 그나저나 레터 또 지각 아니냐!! 아닙니다!! 이번엔 목적이 있었어요. 꼭 주말 아침에 구독자님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가. (그 이유는! 바로! 뒤에 나옵니댜리 웨이러미닛💛)

태풍도 말복도 지나가고 하니까 확실히 서늘해진 감이 들어요. 한낮에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요ㅎㅎ 그래도 밤에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어쩐지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여름도 지나가고 있네요. 시간이, 정말 흐르고 있군요. 매일매일 이렇게 지나보내다보면 가을이 오고, 뒷산에 단풍이 들고, 또 눈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오겠죠.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 이렇게 감상적이어지는지 모르겠네요.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꽃시장에 다녀왔는데요, 여름꽃들이 한창이더라고요. 여린 겨울 꽃들에 비해 여름 꽃들은 힘이 좋습니다. 여름의 해와 땅의 에너지가 꽃에 머무는 것 같아요. 아, 갑자기 꽃시장에 갔던건 장미를 좀 살까 해서였어요. 저는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꽃잎이 빽빽하게 들어찬 가든로즈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근데 난데없이 이 빵실한 테디베어 해바라기에 치여서 정신없이 결제해버리고 말았지 뭐에요. '꽃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천천히 고민해 봐야지' 한 다짐이 무색하게 보자마자 계속 머리 속이 이 친구로 가득차서 결국 한 단을 샀어요. 사랑에 빠지는건 정말 한순간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식탁 위에서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있는 이 테디베어 해바라기를 보니까 얼마나 귀엽던지. 주먹을 꼭 쥐고 너무 귀여워! 하고 소리치고는 꽃잎에 이마를 살짝 부볐습니다. 보드라워! 으으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이번 여름의 사치는 이 테디베어 해바라기로 다 한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오리가 나오는 계절입니다. 매해 해온 것 처럼 아오리로 사과파이를 해야하는데, 너무 더워서 엄두도 못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해야겠죠? 작게 한 판 만들어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어야겠습니다. 이쯤 되고 나니 또 이번주 레터 제목이 떠오르죠. 황태해장국이랑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다 무슨 연관이야...? 싶으실 수도 있어요.

하하 맞아요 연관성 0%! 제철 식재료 레터를 지향했으나 점점 제멋대로가 되어가는 메뉴선정때문에 혼란하실 분들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오나, 어쩔 수 없어요! 계절의 제철이 있다면 입맛의 제철도 있는 법이라구요. 요즘 제가 술마실 일이 좀 많았어가지고 해장을 하다보니까 황태해장국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레터를 통해 저희 집 이야기를 종종하게 되는데요, 저희 집은 아주 평범하지는 않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꽤나 독립적이고, 사랑이 많다거나...하기 보다는 그냥 다들 알아서 잘 사는 느낌? 그래서 저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큰 편은 아니에요. 워낙 다들 개성도 취향도 제각각이기도 하고. 그래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족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리면 먹는 것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황태해장국도 그 중 하나에요.

어릴때 주말 아침에는 자연스럽게 온가족이 일어나 집근처의 황태해장국집에 갔었거든요. 뽀얗게 끓어오르는 황태해장국에 계란 한 알을 깨어넣고 졸린 눈을 여전히 부비던 중학교 시절의 제가 늘 거기 있었습니다. 저는 정작 황태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래서 계란이 익는 동안 젓가락을 들고 황태를 하나하나 골라냈습니다. 그럼 황태를 좋아하는 조여사(=엄마)가 "너는 꼭 그러더라" 하면서 제 황태를 모두 가져가서 엄마의 뚝배기에 털어넣었죠. 오징어 젓갈이 반찬으로 나오는 곳이라 밥에 칼칼한 오징어젓갈을 얹고, 황태해장국 안에 들어있는 콩나물을 꺼내 함께 먹었습니다. 한 입에 크게 넣고 우물우물 씹다 보면 잠이 깼어요. 밥을 다 먹고 나면 나와서 기지개를 켜고, 슬슬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쓰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어립니다. 황태해장국을 먹는 시간은 제가 정말 좋아했던 주말 아침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종종 집에서 황태해장국을 끓입니다. 술을 좀 많이 먹었다 싶은 날에는 꼭이요. 집에서 술을 진탕 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의 친구들에게도 종종 끓여줍니다. 황태해장국을 먹을때면 어쩐지 속도 마음도 모두 따뜻해집니다. 아, 저는 아직도 종종 본가에 가면 그 황태해장국집에 아침을 먹으러 갑니다. 여전히 부모님이랑요.

황태해장국을 먹던 아침을 떠올리며

늘 먹던 그 집의 황태해장국을 따라하기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저도 이제 나름의 경험치가 쌓여서 꽤 그럴듯한 황태해장국을 끓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육수를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솔직히 집에서 무슨 육수에요 황태가 끓으면서 육수 내줄텐데! 과감하게 생략합니다. 그럼 일단 콩나물을 다듬어볼까요.

전에 멸치육수 내는 레터를 쓰면서 멸치 다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콩나물도 제겐 비슷한 느낌입니다. 사실 콩나물 꼬리를 뗄 필요는 없다고 하는데요, 저는 어쩐지 떼는걸 좋아해요. 요리하고 나면 꼬리가 없는 편이 깔끔하기도 하고, 간단한 요리에도 마음을 조금은 더하고 싶어서요. 요리를 하고 나면 꼬리 부분이 질겨질 수 밖에 없거든요. 근데 내가 조금 손을 더 들이면 요리를 먹을 사람이 그 질긴 부분을 씹지 않아도 되잖아요. 맛있는 것만, 좋은 것만 주고싶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시간이 들어도 콩나물 꼬리는 다 떼는 편이에요. 주방에 서서 콩나물을 골라서 꼬리를 떼고, 혹시 상한게 있으면 머리도 떼어버리고, 시든건 거둬내고. 그러면서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고요. 저는 명상에도 워낙 젬병인데, 멸치를 손질하거나 콩나물을 손질하는 시간이 명상에 가장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을 조금 했습니다.

황태해장국을 끓여야 하니까 황태는 멸치, 다시마만큼이나 저희집 찬장의 필수품입니다. 좋은걸 골라 산다거나 하지는 않고요, 그냥 적당히 대형마트에서 주문하는 편이에요. 황태는 넉넉하게 꺼내서 물에 살짝 담급니다. 오래 불릴 필요는 없어요. 진짜 물을 금방 먹거든요. 불어난 황태를 만져보면 참 보들보들합니다. 방금까지 까슬까슬한 건어물이었는데, 갑자기 테디베어 해바라기 꽃잎처럼 보드라워져요. 참 신기하죠.

불어난 황태는 물을 따라낸 후 두손으로 꼭 쥐어서 물기를 제거해줍니다. 그 다음엔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줘요. 칼로 자르기 귀찮아서 가위로 해결하는 편입니다. 황태가 생각보다 익으면서 많이 줄어들어서, 5cm정도 길이는 되어야 (골라내기...) 좋더라고요. 아하하하하 저 진짜 이상한 편식쟁이에요. 황태육수는 먹으면서 황태는 싫다니. 어쩔 수 없죠 모 🤷‍♀️ 원래는 귀찮아서 무는 따로 안넣는데, 오늘은 레터를 쓴다는 핑계로 무도 사와봤습니다. 무도 적당히 나박나박 썰어둡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가 황태해장국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단계중에 하나인데요! 냄비에 참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황태와 무를 넣고 달달 볶아줍니다. 중불에서 천천히 볶다보면 물기를 머금었던 촉촉한 황태의 겉부분이 하얗게 피어나는 순간이 오거든요! 마른 듯, 포슬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글자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요리를 하다 보면 딱 이거구나! 싶어지는 순간이 있을거에요. 바로 그때에요. 이때까지는 볶아줘야 해요.

황태를 볶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요, 참기름 때문입니다! 볶을 때 사용된 참기름이 유화되어서 황태 해장국의 뽀얀 색을 내는거거든요. 황태를 그냥 끓이면 맑은 육수가 나와요. 그러니까 뽀얀 국물은 육수 속의 단백질이 참기름을 유화시켜서 나오는 결과물인거죠. 그래서 참기름의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 뽀얀 색이 나오기 어려워요.

그럼 물을 부어줍니다! 뜨거운 냄비에 찬 물이 들어가면 파아아아 하는 소리가 나잖아요. 괜찮아요! 언제나 물은 과감하게! 콩나물도 넣고,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다시마도 한 조각 넣고 센불로 끓여줍니다. 한 소끔 끓어오르면 불을 가장 약하게 줄이고 뚜껑을 닫고 천천히 끓여줍니다.

이때부터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집니다. 기분좋은 냄새- 냄새만 맡아도 좀 해장되는 느낌적 느낌.....최근에 과음을 좀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만은....🤐 모든 음식 냄새가 다 좋은건 아닌데, 황태해장국 끓이는 냄새나, 오븐에서 익어가는 타르트의 버터 냄새, 라구 소스의 토마토 냄새 같은 것들은 집안을 가득 채운다고 해도 대환영입니다.

30~40분 정도 천천히 끓여주면 바로 이렇게! 육수가 뽀얗게 우러납니다. 저는 이 때부터 불을 더 줄인 후 조금 더 끓여서 국물이 60% 정도 남을 때까지 기다려요. 그래야 충분히 맛이 우러나고, 간이 맞는 느낌입니다. 처음부터 물을 적게 잡는 방법도 있지만, 저는 물을 넉넉하게 잡는 편이라서요.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 상태에서 바로 간 해서 먹어도 좋지만, 저는 황태해장국을 뚝배기에 담아먹는걸 좋아해요! 저희집에서는 사이즈가 다른 뚝배기가 한 3개쯤 있고 😇 오늘은 혼자 먹을 때 쓰는 작은 뚝배기를 꺼냈습니다. 끓여놓은 황태해장국 베이스를 뚝배기에 담아 끓인 후에 두부와 청양고추 약간, 그리고 중요한 달걀을 넣어줍니다.

댤걀을 넣은 후에는 꼭 아래의 콩나물을 끄집어내서 달걀을 덮어줍니다. 골고루 잘 익으라고요. 가게에서처럼 펄펄 끓는 뚝배기는 아니라서 불 위에서 달걀을 익히지 않으면 안되더라고요. 전에 한 번 그냥 황태달걀국을 먹을 뻔 한 적이 있어서, 꼭 끓일 때 달걀을 넣어줍니다. 마지막으로 소금이랑 액젓으로 간을 좀 하고요!

여기에 새우젓으로 간을 조금 더 하면 좋은데, 솔직히 혼자 사는 집에 새우젓이 무슨 말이야...(뚝배기도 3개가 있으면서 새우젓이 없는게 이상하지 않나 싶긴 한데요, 새우젓 이상하게 자꾸 상한다구요 😩) 그냥 소금이랑 액젓으로 간 합니다. 저는 요즘 음식에 연두나 간장을 조금 적게 쓰고 있는데요, 연두를 넣으면 은근히 간장맛이 강하게 나서 소금을 써서 약간은 순진한 맛의 간을 맞추고 있답니다.

짜잔. 끝입니다. 나영표 황태해장국이에요! 지난 주에 먹은 술도 다 내려갈 것 같은 그런 맛입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의 따끈한 주말 아침이 생각나는 그런 맛.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고 나면 늘 약간 알 수 없는 마음이 되어버려요. 좋았다가, 싫었다가, 그래도 가족이니까 싶다가, 또 미웠다가. 하지만 다음번에 본가에 가면 아빠랑 술을 한 잔 하고, 아침에 황태해장국을 먹어야겠네요.

과음한 다음날을 위한 1인분의 황태해장국

황태 반 줌

무 50g

콩나물 한 줌

참기름 3T

물 600ml

다시마 1장*

달걀 1개

두부 50g

청양고추 약간

소금, 액젓 or 새우젓

1. 황태를 물에 불린 후 물기를 꼭 짜서 먹기좋은 크기로 썰어줍니다.

2. 무와 두부는 3cm*3cm 사이즈로 나박썰기 해주세요.

3. 콩나물은 잘 씻어낸 후 꼬리를 떼주세요.

4. 냄비에 참기름을 두른 후 황태와 무를 넣고 달달 볶아줍니다. 황태의 겉표면이 하얗게 일어나면 물과 다시마, 그리고 손질한 콩나물을 넣고 센불로 끓여줍니다. 국물이 한 소끔 끓어오르고 나면 약불로 줄인 후 뚜껑을 닫고 천천히 20분 정도 익혀줍니다.

5.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걷어내 버린 후 불을 가능한 줄이고 뚜껑을 닫고 10분 정도 더 끓여서 맛이 깊이 우러나게 해줍니다.

6. 맛이 충분히 우러났다 싶으면 두부와 달걀, 청양고추를 넣어서 센불로 한 소끔 끓여줍니다. 소금이나 새우젓, 액젓 등으로 간을 맞춘 후 마무리합니다.

* 혹시 다시마가 없다면 물에 연두 1/2t를 타서 간단한 버전의 육수를 만들어 사용해도 좋아요

지난 레터에서 복숭아를 시켰다고 했었는데요, 사실 늘 시켜먹던 후배네 농원의 복숭아 농사가 잘 안되어서 이번에 출하를 거의 못했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저도 못받았고요.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이래요. 서울은 비 피해도 태풍 피해도 아주 크지 않았지만 남부/강원도 지방은 그렇지 않았어서 올해 여러모로 과일 농사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많은 농가들이 피해를 봤을텐데, 동시에 소비자로서 벌써 가을의 과일 가격이 걱정이 되어요. 올해는 과일을 많이 먹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정말 여러모로 수상한 시절입니다.

그래도 구독자님, 조금 서늘해진 공기를 즐기면서 야장에서 맥주 한 잔 꼭 하는 즐거움이 있는 여름 되시길 바래요. 수상하고 어려운 시절에도 낭만과 사랑은 잃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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