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가 정말 퍼붓죠. 세상에 이렇게 비가 올 일이야. 아침마다 빗소리에 깨는 일이 점점 익숙해집니다. 비가 안오면 또 얼마나 덥고요. 세상에 화장을 못하겠어요. (평소에는 했던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네 평소에도 안합니다 화장...) 약속이라도 있다 치면 맨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언제 좀 시원해지죠?

더워서 그런지 입맛도 떨어졌어요. 세상에 무슨 일이야~~~ 먹고싶은게 없다니~~~ 심지어 비가 오는데 전을 부치고 싶은 생각도 안들다니~~~. 말세야 말세 (?) 여튼 그래서 이번 주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나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불도 쓰고싶지 않고, 그래서 대충 밥에 아무거나 넣어서 고추장 넣고 석석 비벼먹던 날들이 지나가다....머리를 퍼뜩 스쳐가는 메뉴가 있었습니다. 보리밥! 

근데 막 화려하게 찌개랑 고기랑 나물 한사바리랑 해서 나오는 그런 보리밥 말고요, 칼국수 시키면 주는 그 조막만한 보리밥이요. 서울에는 없나...? 제가 있던 제천이랑 원주에서는 칼국수집 중에 종종 보리밥을 주는데가 있었어요. 진짜 한주먹짜리 찬 보리밥이 나오는데, 거기 열무물김치랑 고추장, 참기름 조금 넣어 쓱쓱 비벼먹으면서 칼국수를 기다리는거죠. 저는 그게 진짜 늘 너무 좋았어요.  

사진에 있는 바로 저건데요, 저게 뭐라고 진짜 제 기억 속에서 가장 별 것 아니지만 늘 입맛이 돌게 하는 메뉴에요. 여름 하면 떠오르는 메뉴이기도 한데, 서울에 올라와서는 잊고 있었어요. 서울에서 갔던 칼국수 집들 중에는 보리밥 주는 데가 없었거든요. 근데 저 보리밥 진짜 좋아하는데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가끔 이런 것들이 있더라고요. 너무 익숙해서 당연히 해본 적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요리들. 

이참에 보리밥을 한 번 지어보자! 생각이 들어서 보리를 사려고 인터넷에 '보리'를 딱 쳤는데요! 그...보리가 되게 종류가 많더라고요....? 저는 압맥, 통보리 정도 밖에 몰랐는데 늘보리, 찰보리, 쌀보리... 이 중에 내가 사야하는건 뭐지....? 사실 이럴때는 조여사(=엄마)한테 전화해보는게 제일 좋은데, 이때 조여사하구 좀 사이가 안좋았어서 😅 이 참에 보리 공부도 좀 해볼까 하고 알아보았습니다. 

이 중에서 제가 구입한 것은 찰보리에요. 왜냐고요? 사실 마트에 이것밖에 없었어요 ㅋㅋㅋ 늘보리를 사고싶었는데! 어쩔 수 있나요. 찰보리라도 팔아주는 홈플러스 땡큐입니다. 

그렇습니다 보리밥은 두가지로 나뉘어요. 쌀을 섞어 짓는 보리밥과 보리만으로 짓는 보리밥. 그 중에서도 보리만 넣는 보리밥을 '꽁보리밥'이라고 합니다. 쌀을 넣어 지어도 좋지만 저는 보리만 잔뜩 들어간 꽁보리밥을 좋아합니다. 입안에서 보리가 알알이 흩어져 돌아다니는 그 느낌도 좋고요. 차갑지 않은 구슬아이스크림 느낌이랄까? 그래서 오늘은 꽁보리밥에 도전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잡곡은 쌀이랑 익는 온도나 시간이 달라서 전처리를 해주는 것이 좋아요. 곡물의 전처리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 번째, 오래 불린다. 두 번째, 한 번 데친다. 저는 데치는 것을 선호해요. 게다가 현미나 보리 같은 것들은 넉넉하게 데친 후에 냉동실에 넣어두면 그때그때 꺼내서 바로 밥을 짓기 좋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삶기로 했습니다. 곡물을 너무 오래 삶으면 맛이 빠지거든요. 그러니까 한 5~10분 내외로 삶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잡곡이 물을 많이 흡수할테니까 물의 양은 늘 넉넉하게요. 어차피 체에 받쳐 물기를 뺄 것이니까 한강처럼 넉넉 해도 괜찮아요. 물이 끓으면 보리를 넣어줍니다. 계속 저어줄 필요는 없는데, 보리를 넣고 나서 대여섯번 정도 휘휘 저어서 애들이 바닥에 가라앉지 않도록 해주세요. 

불을 중불로 줄인 다음에 물 속에서 익어가는 보리를 보면요, 알곡 겉부분에 솜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섬유질이 밖으로 조금 나와서 보들보들하게 가장자리를 감싸주거든요. 하나 꺼내서 만져보면 약간 미끈미끈 하다고 해야하나? 보드라우면서도 미끄럽고, 통통해요. 참 귀여워요. 식재료를 귀여워하는 스스로를 볼 때마다 내가 음식을, 요리를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한참을 보리를 귀여워하다가 보니 10분에 맞춰놓은 타이머가 울립니다. 이제 보리를 건져낼 타이밍이에요. 보리를 건져내서 찬물에 한 번 가볍게 씻어낸 후에 체에 받쳐 물기를 빼고 식혔습니다. 지금 보리가 반만 익어있는거 보이세요? 중간에 심지는 불투명하고, 반 정도는 투명한. 딱 저 정도만 익히면 돼요. 

보리가 충분히 식으면 지퍼백에 넓게 펴서 담고 냉동해줍니다. 저는 1시간 정도 지난 후에 꺼내서 손으로 탕탕 쳐서 좀 부숴줬어요. 안그럼....너무 큰 덩어리로 얼어버려서 다음에 쓰기가 어렵거든요. 물론 근데 구독자님은 힘조절을 좀 하시구....제가 또 동네에서 힘센걸로 유명한데, 얼은 보리 깨다가 봉투도 찢어서 😇 주방 곳곳에 보리가 발사되었다는 사실..... 보리 삶은지 10일은 됐는데 아직도 청소하다 보리알이 나와요 흑흑😭

자 이제 밥을 지어볼까요. 밥은! 노래하는 우리 쿠쿠가 해줄거예요. 삶아둔 찰보리 한 컵을 넣고, 물은 한 컵보다 조금 적게 넣습니다. 이미 전처리를 해둔 보리라 물이 아주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거거든요. 게다가 우리가 평소에 쓰는 건조된 쌀이랑 다르게 이미 좀 불어있는 상태라 같은 한 컵이라고 해도 들어가는 보리의 양이 적어요. 그래서 물의 양을 조금 더 적게 잡아야 합니다. 

전자제품은 대부분 비슷하다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전자제품을 내 식구로 들이기 위해서는 적응이 필요한 법이거든요. 오븐이나 밥솥이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예를들면 레시피에서는 180도에서 10분 익히면 된다고 했는데 내 오븐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온도를 조금씩 높여보면서 내 오븐의 최적온도를 찾아봐야 해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오븐도 꼭 기존 레시피보다 10도 정도 높여야 요리가 제대로 됩니다. 아마 어딘가에서 바깥 공기가 들어가고 있다거나 한 거겠죠?

밥솥도 마찬가지에요. 선에 딱 맞췄는데 묘하게 밥이 질다거나 밥이 되다거나 하면 조금씩 조정하면서 내 밥솥이랑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저희집 쿠쿠는 물을 조금 더 넣어주는걸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야 촉촉한 쌀밥을 지어줘요. 하지만 영영 적응 못해서 내외하는 가전제품도 있어요 사실 🧐 저희 집에도 하나 있었습니다...지금은 그 가전제품이랑 안녕했지만요. 사람도 물건도 한 식구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가봅니다. 

오늘의 메뉴를 위해 보리 다음으로 준비해야하는건 이 열무물김치! 양념 진하게 무쳐내는 열무김치 말구요, 희멀겋게 담그는 이 열무 물김치! 얼갈이랑 열무랑 반반 들어있는! 열무물김치여야 해요. 저 열무물김치도 담가본적 없거든요! 그래서 이참에 막 어 김치도 담가봐?! 이러다가 진정했습니다.

마침 동네 두부집에서 팔고 있길래 7000원 주고 사왔어요 😉 제가 늘 말하지 않습니까 굳이 안해도 될 고생은 하지 말자! 문명의 이기 최고! 돈 주고 사는 남의 노동력 최고! 그나저나 처음 사보는데 이집 김치를 잘하시네....두부랑 콩국만 맛있게 하시는 줄 알았더니 역시 전반적으로 손맛이 좋으신가봐요. 덕분에 저도 편하게 여름 한끼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쿠쿠가 밥을 다 했다고 칙칙거리면서 노래를 부르면요, 보온 모드를 끄고 밥을 꺼내 식혀줍니다. 이 열무 보리밥의 매력 중 하나는 밥이 충분히 식어있다는 점이거든요. 밥을 믹싱볼에 옮겨담고 이리저리 공기랑 섞으면서 식혀줬습니다. 배고팠거든요. 보통은 그냥 밖에 좀 내어두면 돼요. 

여기에 열무물김치랑, 고추장, 그리고 참기름을 조금 넣어줍니다. 그리고 잘 비비기만 하면 끝이에요. 정말 간단하죠. 밥은 쿠쿠가 해주고, 김치는 동네 반찬가게가 해주고요. 요리도 일도 하기 싫은 여름메뉴로 딱인 것 같습니다. 

보통 비빔밥에 계란후라이를 올리는게 정석이잖아요. 저도 비빔밥을 할 때 계란 후라이를 꼭 빼놓지 않는 편인데, 이 비빔밥만은 예외입니다. 참기름도 조금만 넣고요. 특별할 것 없는 이 맛이 참 좋거든요. 입 안에서 알알이 돌아다니는 보리알은 씹으면 톡톡 터지고, 열무랑 얼갈이는 사각사각하고, 고추장은 입맛을 돋우고요. 

칼국수집에서 두숟가락 어치씩 나올 때는 그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많으니까 솔직히 더 만족스럽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이 별 것 없는 보리밥을 자주 해먹게 될 것 같아요. 사실 저한테는 보리밥은 시골음식이라는 생각이 있는데요, 저는 제천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대부분의 어린시절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보리밥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동네방네 알리고 싶습니다. 구독자님도 여름 보리밥의 매력을 조금 더 알게 되면 좋겠어요. 

없습니다! 꺄항항 비빔밥은 원래 대충 해먹는게 매력인 요리니까, 레시피는 없습니다. 이참에 동네 반찬가게에 들러서 열무물김치를 사보고, 보리쌀도 구입해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아무 고추장이랑 마트에서 사온 참기름을 넣어서 비벼보시길 바래요. 그게 다에요. 쉽고 맛있는 여름 보내세요!

그나저나 아무도 묻지 않으셨지만 변명을 좀 하자면요, 6월 말에 출장을 좀 다녀왔는데 다녀오니까 너무 힘들어서 레터를 쓸 수 없었어요....사실 진짜 요리할 힘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7월에야 구독자님에게 레터를 보내게 되었네요. 왜 주절주절 말하냐구요 그냥 제가 찔려서요 🙄 아하하하 다다음주에는 반짝이는 여름 토마토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남은 7월에는 비가 좀 덜 오길 바라며, 곧 돌아올게요. 시원하고 즐거운 여름 보내고 계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