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이 더워서 정말 누워서 수박만 매일같이 먹고 있어요. 밥 대신 수박만 먹는 날도 있고요. 저는 워낙 땀이 많은 편이라 조금만 더워져도 쉽게 지치거든요. 그래서 더 힘든가봐요.

사실 밥 대신 수박만 먹은건 너무 더워서 불을 쓸 엄두가 안나기 때문이기도 했는데요, 그래도 사람이 수박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뭔가 먹긴 먹어야겠는데...하다가 지난 4월에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먹었던 파스타가 자꾸 아른아른 하는 것입니다. 3주간의 이탈리아 여행의 후유증이 상당합니다. 이탈리아에 몇 년은 살았던 사람처럼 이탈리아를 그리워하고 있는데요 😂 스스로도 좀 어이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이탈리아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그리워하고 있는 파스타는 주키니를 넣은 네라노 스파게티(Spaghetti alla Nerano)였는데요, 별거 없어보이면서도 이게 진짜 너무 맛있었단 말이죠. 엄청 크리미한 파스타여서 저는 크림이 들어가는 줄 알았을 정도였는데, 나중에 찾아보니까 치즈로만 저 맛을 내는거더라고요. 이탈리아는 정말 치즈로 많은 것을 해내는 나라구나. 

저는 주키니는 다 같은 주키니인줄 알았거든요. 근데 나폴리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의 주인이 이탈리아 주키니는 일반 주키니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더라고요. 주키니는 19세기에 미대륙에서부터 이탈리아로 전래된 이후에 밀라노 근교 지역에서 많이 키워졌다고 해요. 이탈리아 토종 주키니는 요즘의 일반적인 주키니(=진한 초록색)와는 다르게 개구리같은 무늬와 밝은 연두색의 줄무늬를 가지고 있대요. 일반 주키니에 비해 길이가 짧고 한 쪽이 조금 더 통통하다는 특징도 있다고 합니다.

맛도 조금 다릅니다. 일반 주키니에 비해 달달한 맛이 강한 편이라고요. 이탈리아에서 먹어보니까 딱 애호박과 일반 주키니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았어요. 식감은 일반 주키니에 가깝게 익어도 여전히 뭉그러지지 않고 식감이 살아있었고, 맛은 애호박처럼 달달하고요. 완벽해...! (?) 

이제는 대부분의 식재료와 향신료를 세계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으니까 여행지에서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조금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곳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건 여전히 존재하는군요. 이 완벽한 주키니처럼요. 

확실한 대체재료를 알지 않는 한 재료를 임의로 변경하는 일은 잘 없지만, 이번에는 이탈리아 주키니가 아니라 애호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약간 도전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심지어 프로볼로네 치즈를 못 구해서 파르마산 치즈를 사용하는 레시피를 이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약간 긴장한 채로 주방 앞에 섰습니다. 망하면 뭐....애호박볶음 해먹으면 되니까...이런 마음도 함께....

파스타 요리의 제 1단계는 늘 파스타 삶기죠. 오늘은 파스타를 적당량 삶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무래도 적어보이는데...그쵸. 저만 적어보이는게 아니죠? 그래도 참아봤어요. 모자르면 수박 먹어야지 하면서 🍉🍉 네라노 파스타는 치즈로 간을 해야하기 때문에 면수에 소금을 과하게 넣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적당히~

파스타가 삶아지는 동안 애호박을 준비해야죠. 네라노 파스타는 주키니를 넣어 튀긴 후에 다시 파스타와 면수를 넣어 끓여내면서 맛을 끌어내는 요리인데요, '튀겼다 물에 넣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여' 싶을 수는 있지만 튀기면서 수분이 빠져나가고 응축된 단맛과 감칠맛을 다시 면수에 녹여낸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리고 파스타가 그 맛을 충분히 머금게 하는 것이 중요한 요리인 셈이죠.

애호박은 주키니보다 수분이 많아서 애매한 두께로 썰었다가는 팬에서 튀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최대한 얇게 하려고 슬라이서로 슥슥 밀었습니다. 

얇게 썬 애호박은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튀기듯이 볶아줍니다. 그냥 팬에 해도 되지만 기름 튀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까지 기름을 많이 쓰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궁중팬을 기울여서 기름을 적당히 넣고 계속 젓가락으로 흩어가면서 튀겼습니다. 애호박끼리 붙어있는 부분의 수분이 더 느리게 날아가거든요. 그러니까 젓가락으로 계속 흐트러뜨려가면서 튀기는게 중요해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아요. 한 5~7분? 슬슬 흩어가면서 안쪽이 갈색으로 변할 즈음 기름에서 빼내줍니다. (기름은 버리지 말구요!) 

아직 좀 덜 튀겨진것 같은데? 싶어도 이 단계에서 꺼내주는 것이 좋아요. 이 단계가 지나가면 갑자기 타버리거든요. 그리고 기름에서 나오면 갑자기 좀 더 바삭해지니까요.

네라노 스파게티는 영화배우 스탠리 투치(Stanley Tucci)가 2022년에 이탈리아 음식을 소개하는 TV쇼에서 네라노 스파게티가 자신의 최애라고 소개하면서 미국에서 유명세를 탄 메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하면 '바로 그 스탠리 투치의 파스타!' 같은 제목의 기사가 엄청 뜨더라고요. 이 아저씨 맛잘알이시네...

이쯤이면 이제 파스타가 다 익었을 즈음이에요. 기름이 그대로 있는 팬에 튀긴 호박 2/3정도와 넉넉한 양의 면수, 그리고 파스타를 넣고 중불로 슬슬 볶기 시작합니다. 파스타를 넣기 전에 면수+튀긴 호박만 넣어 좀 끓이는 레시피도 있는데, 사실 저는 1인분을 만든거라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어요 (요리하다 급격하게 배고파진 탓이 조금 더 크겠지만은🙄)

면수가 어느정도 졸아들면 치즈를 듬뿍 갈아올립니다. 사실 프로폴로네 치즈는 모짜렐라 치즈 계열이기도 하고 완전히 수분이 빠지지 않은 반경성 치즈라 유화가 조금 더 쉬운 편인데, 단단한 경성치즈인 페코리노치즈 & 파마산 치즈는 그것보다 유화가 조금 어려워요. 그래서 카치오에페페나 까르보나라 파스타가 만들기 어려운 파스타이기도 하고요. 저도 정말 많이 실패해봤거든요. 그래도 늘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도전합니다.

치즈는 늘 생각보다 조금 더 많이 갈아도 됩니다. 일단 불을 끄고, 치즈를 올린 후에 면수를 한 국자 추가하고 불을 약불로 해서 빠르게 섞어줍니다. 치즈가 바닥에 굳기 시작해요. 그래도 놀라지 않고! 쫄지 않고! 열심히 섞어줍니다. 젓가락보다는 실리콘 스패출라가 효과적이에요. 녹아내려 굳은 애들을 싹싹 긁어다가 면에 계속 비빈다는 느낌으로!

이 파스타는 꽤 치즈와 기름, 면수를 잘 유화시키기 위해 꽤 오래 볶아야 하기 때문에 파스타를 꼭 알덴테로 삶으시기를 추천드려요. 저는 잘~~~익은 파스타를 선호하는 사람이라 신경쓰지 않았지만요! 이탈리아 사람들도 파스타 잘 익혀먹더라고요. 덕분에 이탈리아인들과 내적 친밀감 1000점 되었던 ㅋㅋ 아 근데 쌀은 또 덜익혀 먹더라고요. 리조또를 동그랗게 굳혀 튀긴 음식인 아란치니를 먹었는데 세상 생쌀이어가지고. 쌀 익혀먹으라고 가르쳐주고 싶었어....

애니웨이 그렇게 열심히 섞다 보면 어느순간 치즈 덩어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거에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때 불에서 내리고 팬에 담아줘요. 면에 치즈가 착 달라붙었다는 그 느낌이 오는 순간을 잘 기억해주세요. 요리는 과학이기도 하고 수학이기도 하지만 느낌이기도 하거든요. 그 순간의 감각과 느낌을 기억했다가 언제든 이 요리를 할때 그 감각을 꺼내서 확인해야 해요. 

기름진 음식들은 차가운 그릇에 닿아 식으면 급격하게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릇을 조금 데워놓는 것도 좋습니다. 전자레인지에 잠깐 돌려도 되는데, 그럴 수 없는 그릇들은 개수대에서 따듯한 물을 좀 맞도록 해도 충분히 따듯해집니다. (뜨거운 물 부으면 반동강나요...구독자님의 그릇 절대지켜...!)

파스타가 완성되고 나면 남겨두었던 애호박 튀김을 다시 얹어줍니다. 장식이에요! 예쁜 장식! 만들때는 애호박을 많이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완성하고 보니 애호박이 좀 더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다음엔 늘려서 만들어봐야지. 그때는 치즈도 프로볼로네를 써보고요. 하지만 프로볼로네가 집에 있을 일보다 파마산이 있는 날이 많으니까 앞으로도 파마산을 쓸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진짜 너무 맛있어서 놀랐어요. 물론 이탈리아에서 먹었던 네라노 파스타와는 조금 다르지만요, 애호박이 이렇게 달고 맛있었나? 정말 그냥 애호박, 면수, 치즈만 넣었는데 감칠맛이 얼마나 좋은지요. 애호박을 너무 홀대해왔던 것 같다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생각합니다. 애호박 너 진짜 좋은 애였구나. 

이 레시피는 아마 제가 2~3번 더 만들어보면서 최종 레시피를 잡게 될 것 같아요.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면서 변경/조정되어야 하는 부분이 더 있거든요. 하지만 여러분이 따라하실 수 있도록 이번에 사용한 레시피를 남겨둘게요!

파스타 90~100g

애호박 1/3개

식용유 2T + 올리브오일 2T

파르미지아노 치즈 60g 정도

버터 1t

  

앞으로도 이탈리아가 그리우면 네라노 스파게티를 종종 만들어먹게 되겠죠? 여행을 마치고 제게 남은 것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네요. 이탈리아에서 배워온 것들을 펼쳐놓고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능소화가 피어나고 있는 6월의 중간에... 아! 초당옥수수 시즌이 시작됐더라고요. 초당옥수수 사드세요 여러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