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으로 밀키트가 정말 급물살을 탔죠. 사실 저는 밀키트에 꽤 긍정적인 편입니다. 요리에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엄청난 마중물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가 어려운데, 밀키트를 이용하면 '해볼만하다'는 감각을 주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밀키트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내심 흐뭇해했습니다. (니가 왜? 싶지만요)

그런데 정작 저는 밀키트를 사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밀키트 없이도 요리할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밀키트로 나오는 제품들을 보면서 오오 저런것도 있구나 하고 직접 장을 봐서 해먹는 편이었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제품화되어 나오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맛이 열화되거나 희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직접 요리를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부산의 유명한 사천요리 전문점 라라관의 택배를 받아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택배라고는 하지만 거의 밀키트와 유사한 형태로 최소한의 조리만 하면 그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마파두부! 직접 두부 공장과 협업해서 만드신다는 그 라라관 두부로 만든 마파두부는 집에서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퀄리티거든요.

사실 이번에 새로 나온 마라샹궈 밀키트도 사두었어요. 오늘 저녁에 먹으려고요. 보시다시피 정말 넣고, 볶기만 하면 되는 그런 형태라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새 제품이 나올 때 마다 사먹어보는 편이에요.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제가 관심가지지 않은 동안 밀키트의 세계도 차근차근히 발전되어왔을 것이고, 많은 것들이 개선되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나 패러다임에 대해 잘 알아야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있어어서, 밀키트의 세계에 대해서도 배워야 겠다는 마음이 갑자기 막 피어올랐어요. 그리고 밀키트를 검색해보았는데...!

너무나 넓고 방대하고 혼란스러운 밀키트의 세계....그래서 뭘 시켜봐야 할까요....선택지가 많으면 정말 혼란하고, 근데 또 실패는 하고싶지 않은 그런 마음 있죠. 저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는 편이거든요. 사람한테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고민하던 차에 만난 밀키트계의 미슐랭 '미쉬울랭' 팀! 여태까지 수많은 밀키트를 맛보고 리뷰해온 팀인데요, 미쉬울랭팀에게 바로 DM을 보내서 혹시 제게 밀키트를 추천해주실 수 있을지 부탁했는데 흔쾌히 추천해주시기로 해서 바로 의뢰서를 보냈습니다. 밀키트 초심자에게 가장 잘 맞는 제품은 무엇일까요?

바로 요것이었습니다. 의뢰한 조건에 딱 맞는 메뉴였어요. 친절하게 주문 링크까지 같이 보내주셔서 바로 주문했답니다. 다만 이제 지난주에 삼일절 휴무로 오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아니 누가 저한테 삼일절에 쉰다고 말 좀 해주지 😭 나만 몰랐어 또 😭  근데 사실 투표일에 쉬는 것도 당일에 알았어요 저 진짜 일반적인 휴무와 너무 관련없는 삶을 살고 있구나 새삼 생각하게 됐습니다 🙃

이러나 저러나 일단 밀키트를 받았어요!

밀키트 받은 시점이 진짜 절묘했던게 제가 여행 다녀와서 요리하기가 정말 귀찮았거든요. 몸도 좀 피곤하고, 그래서 타이밍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솔직히....저는 제가 국물인간이 될 줄 몰랐거든요? 해외에 나가면 한식 한 번 안먹고도 두세달 여행 잘 하던 그런 인간이었단 말이에요 제가! 한식 찾아먹는 사람들 약간 비웃고!!

그런데...어느 날 부터인가 제가 바로 그 국물인간이 된거에요 국물을 먹지 않으면 뭘 먹은 것 같지도 않은 그런....그리고 며칠 만에 쌀국수든 핫팟이든 뜨끈한 국물을 집어넣으면 내 안의 뿌리깊은 조선을 발견하게 되어버리는 그런.....단전에서 올라오는 깊은 한숨이 나오고 😂 그런 인간에게 이 국물요리는 참 시기적절하였습니다. 미쉬울랭 팀은 역시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있어...!

아 근데 솔직히 사실 저 밀키트 구성품을 열어보고 조금 당황했어요. 저는 다 켜켜이 재어져서 오는 건 줄 알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면 그럴리가 없을텐데 당연하게 제가 직접 조립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한 사람... 하지만 금방 정신 차리고 착착 해냈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배추에 고기를 착착 재고 있었는데,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였을까요. 생각해보니 밀키트 설명서가 없는 것 같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굴하지 않고 제 맘대로 했죠. 느낌 가는 대로~

무언가 조금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쓰레기를 버릴 때 즈음이었습니다. 조리하기 부분의 '배추 -> 청경채잎 -> 소고기 순으로 겹겹이 쌓아줍니다'를 보고 당황한 눈빛으로 제 배추를 보았죠! 그렇습니다. 당당하게 청경채는 따로 모아두었습니다. 푸른기라고는 없는 웜톤의 제 밀푀유를 바라보며....뭐...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요 그쵸 입에서 조립하면 되지 룰루

높이에 맞춰 썬 배추 밀푀유와 숙수, 청경채, 느타리버섯을 넣고 농축육수에 물을 섞어 부었습니다. 10분만 끓이면 된대요. 그렇게 금방 되던가? 싶었는데 일단은 시키는대로 해보았어요. 뚜껑을 닫고, 센불로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이렇게 나베가 익는 사이에 온갖 집기를 치우고, 조리도구도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거든요. 근데 확실히 밀키트는 정리할게 없더라고요. 다 씻어서, 소분해서 들어있으니까 그냥 포장 봉투들만 정리해서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밀키트는 얼핏 보면 비싼 것 같은데, 사실 그 재료를 다 따로 장을 본다고 하면 몇 배의 돈이 듭니다. 소분되어있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남는 재료를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한다거나, 혹시 남아서 버리는 식재료가 없다는 점에서도 경제적입니다. 

정리를 마치고 나서도 시간이 좀 남아서 상을 차리고, 동봉된 소스를 종지에 담았어요. 금방 끓더라구요! 냄비째 테이블에 옮겼습니다. 저희 집에 본의 아니게 레몬 제스트를 갈고 난 그냥 레몬이 너무 많이 남았거든요. 레모네이드를 세잔이나 만들어먹었는데 여전히 레몬이 남았어요. 그래서 레몬 반개를 짜서 국물에 넣었어요. 시큼한 국물? 으에? 하실 수 있지만, 생각해보세요 김치찌개를....우리에겐 정말 시큼한 국물을 뜨겁게 즐기는 문화가 이미 있답니다.

국물부터 먹었는데 정말 어찌나 따끈하고 좋던지. 저는 밀푀유 나베를 먹을 때는 얇은 일본 젓가락을 꺼내서 조심스럽게 한 켜 한 켜 벗겨먹는게 좋더라고요. 벗겨낸 배추의 켜 위에 청경채와 버섯, 숙주를 넣고 살짝 식힌 후에, 쌈을 싸듯이 집어서 소스에 찍어 먹는게 특히 좋아요. 혀를 델 일도 없고, 먹는 모양새도 깔끔하잖아요. 그 다음엔 국물을 떠서 소리없이 입 안에 흘려넣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니까 이미 다 먹고 없더라고요.

밀키트 구성품에 우동이 있었는데, 왠지 이날은 우동이 아니라 죽 감성이라! 계란넣은 죽을 끓였습니다. 마지막에 참기름을 살짝 올리고, 잘 안보이지만 깨소금도 뿌렸어요. 국물에 넣었던 레몬즙의 신맛은 죽을 끓이면서 날아가 사라졌답니다. 

한 4~5년 전에 밀페유나베를 만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솔직히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자주 해먹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20분도 안되어서 완성이 되다니 너무 편한거 있죠. 밀키트 이제 무시할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즐거워졌습니다. 사먹을게 정말 많겠어요. 일단 사둔 라라관의 마라샹궈를 해먹고, 다음엔 또 뭘 해먹어볼까요?

1인분의 밀키트라고 해서 사실 양이 적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채소의 양을 보 보니까 왠지 그냥 혼자 먹을 양이 아닐 것 같더라고요. 흠. 그리고 배추에 비해 고기의 양이 조금 적어보이기도 해서 밸런스를 맞추려면 채소를 조금 덜어내는 것이 좋겠다 싶었어요.

그 생각을 하며 다시 재료들을 쓰윽 보았는데, 제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요리! 야끼우동! 이 모든 재료를 활용해서 만들 수 있는 요리잖아요. 소스도 채소도 우동도 고기도 있다면? 마요네즈만 준비하면 된다면?! 해야죠.

Ingredients

마이셰프 밀푀유 나베 밀키트 

배추 적당량

숙주 적당량

청경채 

쓰고 남은 고기 

느타리 적당량

우동 1팩

농축 육수 1/2팩
설탕 1/2T

마요네즈

식용유 1T

* 베이컨이 있다면 추가해도 좋습니다.

농축양념의 색이 옅어서 맛이 덜해보일 수 있지만 사실 맛은 딱 파는 야끼우동의 그것이었습니다. 설탕을 조금 더 넣어줬으니 입에 착 붙는 달달한 맛도 있었고요. 저는 채소를 반반 나눠 사용했는데, 사실 원하는 만큼 넣어도 괜찮습니다. 마요네즈를 어떻게 예쁘게 뿌리는지 알고 싶었던 분들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큐피마요를 구입해보세요! 일본요리에 어울리는 감칠맛있는 마요네즈인데 뚜껑 자체에 작은 구멍들이 있어서 누구나 전문가처럼 마요네즈를 뿌릴 수 있답니다. 

이렇게 밀키트 하나로 아침에는 나베를, 저녁에는 야키우동을 해먹었네요. 미쉬울랭 팀 덕분에 제 하루가 더욱 맛있고 든든해졌어요. 앞으로 밀키트의 세계를 항해하며 오늘의 이 즐거움을 잊지 않을게요!

지난 6개월간 스티비 크리에이터 트랙 멤버로서 많은 혜택과 지원을 받았는데요, 그 사이에 꼭 다른 뉴스레터 발행팀과 함께 콜라보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번 레터는 정말로 미쉬울랭 팀이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거에요. 콜라보* 레터를 기획하고 함께 고민해서 제작하는 모든 과정에서 미쉬울랭 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 번 미쉬울랭 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요.
* 컬래버레이션이라고 해야하는데 진짜 죽어도 입에 안붙어요.....

사실 이번 레터가 스티비 크리에이터 트랙 멤버로서의 마지막 스페셜레터랍니다. 물론 레터가 끝나는건 아니고요!! 여전히 먹진심은 맛있는 것들을 담아 여러분을 찾아갈거에요. 혹시 뉴스레터를 발행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라면, 꼭 스티비 크리에이터 트랙에 지원해보세요. 같은 레터를 작업하는 동료가 아니더라도 함께 레터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거에요.

지금 시간은 3월 9일 오후 8시지만, 이 레터가 도착할 즈음이면 대선 결과도 나왔을 때겠네요. 모쪼록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결과이길 기도하며, 3월의 두 번째 레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