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땐 뭐다? 밥부터 잘 먹는거죠. 뭘 먹을까 고민하니까 또 금방 신이 났습니다. 뭘 할까 뭘 요리할까 한참 생각하면서 주방을 치웠는데, 역시, 봄동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소 가격들이 많이 오르긴 했더라고요. 오늘은 봄동과 대파와 함께 할인코너의 달래, 그리고 소시지만 하나 사들고 총총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봄동 손질도 달래 손질도 한 세월 걸리니까 얼른 돌아가기로 해요. 

저는 칼 가는 일을 꽤 좋아해요. 칼을 가는 방법은 다양한데, 업장 주방에서는 주로 '야스리'라고 말하는 칼 연마봉을 많이 사용하고, 가정용으로 작게 나오는 칼 연마도구도 있는데 그건 소리가 너무....소름끼쳐서 저는 숫돌을 사용해요. (야스리는 편하긴 한데 왠지 손이 안가더라고요) 학교에서 칼을 가는 법을 배울 때도 숫돌로 배웠기도 하고 촉감도 좋달까요?

칼의 날이 잘 서서, 어떤 재료든 부드럽게 썰리는 것을 보면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집니다. 요리를 하는 일도 조금 더 신나지고요. 새해를 맞아 칼도 벼렸고, 주방도 싹 치웠습니다. 잘 벼려진 날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고 하고 싶지만 저는 배가 고프니 얼른 요리를 시작하기로 해요.

요즘은 봄동도 하우스 재배를 한대요. 달래, 냉이, 취나물 같은 것들도 다 하우스 재배*가 된대요. 춥게 뒀다가 따뜻하게 온도를 올려서 '잠을 깨우는' 방법으로 봄나물을 이른 겨울에도 봄나물을 수확할 수 있다고. 심는 시기는 비슷한데, 하우스에서 환경을 조성해서 키워내는거래요. 

흙이 떨어지니까 봄동 폼폼은 적당히 하고 잎을 뗐습니다. 칼로 중간을 도려내서 한 번에 손질하는 방법도 있지만 저는 봄동을 뒤집어서 잎을 하나씩 떼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 잎 한 잎 뗀 다음에 흐르는 물에 잘 씻어내야 해요. 생각보다 속속들이 더러운 것들이 많거든요. 사실 봄동으로 요리를 할 때 가장 귀찮은 것이 봄동을 잘 씻어내는거죠. 처음엔 그냥 대충대충 씻었는데 그러고 나니 버석거리는 봄동무침을 먹게 되었던 저의 과거....잘 씻어서 채반에 올려두었습니다. 

고춧가루랑 까나리액젓이랑 이런 저런 재료를 넣어서 양념을 만들었어요. 인터넷을 보다가 뜨거운 물에 고춧가루를 불리면 더 맛있다길래 해봤는데 큰차이 없더라고요. 뭔가 새로운걸 발견하게 되는걸까 하고 설렜는데....겉절이 정도에는 큰 의미 없는 팁인가봐요. 

그래도 이런 양념류는 미리 섞은 후에 좀 숙성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단 30~40분이라도요. 그래야 서로 잘 엉기고 맛이 들어서 요리 했을때도 더 맛있거든요. 저는 그래서 사실 양념장을 재료 손질 전에 먼저 만들고, 재료를 손질하는 동안 양념이 숙성되도록 합니다. 

샐러드처럼 슬렁슬렁 섞어서는 완성이 되지 않아요. 힘있게! 막 만들어 겉절이라지만 이 순간만큼은 집중해서 모든 잎에 양념이 고르게 묻게, 뭉치지 않게 해주세요. 칼을 갈 때 처럼요.

저녁으로 먹기 위해 해둔 흰쌀밥을 한 스푼 떠서 봄동겉절이를 올리고 한 입에 집어넣었습니다. 상을 차릴 시간도 없어! 지금 이 순간 서서 완성된 이 맛을 느껴야 한다구요. 따끈한 흰쌀밥도, 봄동겉절이도 무척이나 달았습니다. 우물우물 먹으면서 미소가 나오는 맛. 얼른 저녁상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좋은 샤퀴테리며 좋은 허브, 좋은 와인 마시면서 지내다가도 결국은 이렇게 소시지가 그리워지고 그냥 막 대충 만든 겉절이가 먹고싶어지고. 정말 나고 자란 기억은 어쩔 수 없나봐요. 왠지 초등학교 때 집에서 먹었던 그런 밥을 한 상 차려놓고 나니 왠지 명절같았습니다. 저희 집은 원래도 명절에 모일 친척이 없어서 가족끼리 보냈거든요. 명절이라고 새로운 것도 없지만 왠지 조금 더 신경쓴 밥을 먹어서인지, 조금만 잘 차려놔도 왠지 명절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봄동겉절이는 먹기 전에 꼭 참기름을 곁들여요. 먹을만큼 따로 볼에 담아서 참기름을 적당히 따르고 잘 섞어줬습니다. 그릇에 소담히 담고, 예쁘게 통깨도 뿌리고요. 그렇게 화고 나면 또 조금 다른 맛이 됩니다. 날이 섰던 고춧가루 양념의 맛이 둥글둥글하게 둥글려지니까요. 밥이랑 한 결 잘 어울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