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추리는 사실 화려하고 예쁜 주황빛의 꽃으로 유명한데요, 그 순을 먹는다는 사실은 모르는 분이 많아요. 작년 까지만 해도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올해는 쓱배송에서도 주문할 수 있더라구요. 우연히 발견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주문하고 결제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문앞에 원추리가 놓여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어요.

원추리를 제가 처음 만났던건 18살, 학교의 실습실에서였어요.(=저는 요리 고등학교를 나왔답니다) 그날은 다양한 봄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보라는 과제가 있었던 날이었구요. 여러가지 채소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네요. 원추리가 그만큼 제게 강렬했던 것 같습니다. 매끈하고 보드라운 질감이라는 점도 좋았지만 내가 아는 그 원추리의 순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게 되게 나름의 충격이었나봐요. 원추리는 데친 후에도 매끈한 질감을 가지고 있어서 입 안에서도 샤라락 넘어가고, 단맛이 은은하게 돌아서 씹을 수록 기분도 좋아지거든요. 그때 이후로 원추리는 제 '최애' 봄나물이 되었습니다.

원추리에는 독성이 있어서 너무 많이 먹으면 안된다고 하는데, 원추리가 성장할 수록 독성이 강해진대요. 그래서 어린 순만 따서 충분히 데쳐서 먹는 것이 안전하다고. 아무데서도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걸 보니까 어지간한 양으로는 큰일나지 않나봐요. 그래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혼자 원추리나물 한 봉지를 신나게 먹어보았습니다. 원추리를 된장과 고추장양념 중 어디에 무칠까 하다가, 그냥 둘 다 하면 되지 왜 고민하는건가 싶어져서 후다닥 두 개를 모두 만들었습니다. 왜 고민을 했을까요? 결국 다 먹을거면서 말이에요.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왠지 이런 나물에는 꽁보리밥을 지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보리를 쌀보다 더 많이 넣어 밥을 지어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역시, 나물에 보리밥이라면 비벼야 제맛이겠죠? 사실 사진 밖에는 들기름에 튀기듯 지져낸 달걀후라이가 있었고, 고추장과 향이 좋은 들기름도 있었어요. 사진을 예쁘게 찍고 나서 보람없게 모든 나물과 재료를 그릇에 담고 신나게 비볐습니다. 인스타와 현실은 조금 다르잖아요 그쵸?

한 술 크게 떠서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으면서, 다글다글한 보리밥알 사이로 매끈하게 움직이는 원추리를 느끼며, '역시 봄에는 원추리나물을 놓치면 안돼. 매년 놓치지 말고 먹어야지'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다짐을 했어요. 

올해는 다른 해보다 꽃이 빨리 피고, 빨리 집니다. 봄나물도 다른 해보다 빠르게 사라지겠죠. 그러니 올해는 저도 조금 서둘러야겠습니다. 이 다음에 먹어야 할 것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어제는 사실 두릅을 시키려고 했는데, 잠시 고민하던 사이에 품절되었어요. 다들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 봄의 끝자락을 매어 그릇 위에 풀어놓기에 봄나물만한 것이 없기는 하죠 역시. 오늘은 꼭 두릅을 시키고 말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