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영업시간이 9시로 단축되면서 온 동네 레스토랑들이 대혼란에 빠졌었어요. 저도 덩달아 대혼란이었습니다. 보통 크리스마스와 이브에는 2부제로 운영을 하는데 각 2시간이었던 저녁 식사 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줄어버린 상황이니, 손님들도 혼란, 레스토랑 관계자들도 모두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이 어찌어찌 지나가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아마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제 지인들은 지금 긴장을 잔뜩 하고 첫 서비스를 시작했겠네요. 

(제 친구들과 동료들이 모두 무탈히 이번 크리스마스를 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랬던 시기가 참 요원하네요. 언제쯤 다시 다이빙을 하러 갈 수 있을지. 만 서른살 생일을 갈라파고스에서 맞기로 결정하고 나서 그 전에 가봐야 할 곳들 리스트가 있었는데, 하나도 가보지 못한 채로 갈라파고스에 가게될까봐 걱정이에요. 갈라파고스는 수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이라, 갈라파고스 다이빙 전에 약간 낮은 수온 영역의 바다에 가서 몸을 슬슬 적응시키려고 했었거든요. 뭐...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가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요! 

크리스마스에 딱 어울리는 메뉴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복잡하고, 적당히 오래걸리고, 그리고 아주 맛있는 음식이 하나 있거든요. 나눠먹기도, 만들어놓고 냉동하기에도 좋은 메뉴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메뉴랍니다.

저는 음식에 상상의 이야기를 덧씌우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미트볼 파스타라면....왠지 미국 도시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커플이 아주 작은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상상을 하게 되네요. 테이블에는 빨간색 종이 냅킨이 있고, 취해서 짠 하고 부딪혀도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두꺼운 유리잔에는 적당한 가격의 레드와인이 따라져있고요. 테이블이 어찌나 작은지 서로 이마가 닿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좋은지 테이블 가득 웃음이 묻어있네요. 옆 테이블에는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온 가족이 있고요. 아이의 입가에는 토마토 소스가 묻어있는데, 그것마저도 사랑스러워지는. 그런 아주 보드랍고 달콤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지난번 제주도에서 한 알 곱게 받아온 유기농 레몬을 써보았습니다. 시트러스류의 제스트를 쓸 때는 아무래도 베이킹소다로 왁스를 벗겨내야 하는데 이 레몬은 왁스코팅이 없어서 가볍게 씻어서 바로 사용했어요. 향이 참 좋더라구요. 레몬 반개를 갈갈갈갈 긁어내서 반죽에 탁탁 털어넣었습니다.

보통 고기반죽을 촉촉하게 하려면 지방을 넣는다고 생각하는데, 아예 수분을 첨가해버리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더라구요. 훨씬 쉽기도 하고요. 정말 달라요!

그렇게 만든 반죽은 조금 질척거리지만, 그래도 여전히 둥굴리며 모양을 만들 수 있어요. 숟가락으로 적당한 양을 떼어 손에 올리고 동그랗게 모양을 잡죠. 올해는 분명 조금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습니다 큰손 어디 안가지....

예쁘게 담아서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가장 맛있을 때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사진을 찍다 보면 특히나 음식이 식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저는 그래서 꼭 제대로 담기 전에, 작은 종지에 음식을 멋없게+빨리 담아서 먹어봅니다. 가장 맛있는 순간에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건 요리하는 사람의 작은 특권이니까요. 

어쨌든 산마르자노 토마토니까 맛있을거에요. 이탈리아의 토마토 품종인데, 감칠맛이 좋고 과육이 단단해서 아주 많이 사용하거든요. 사실 뭔들 이탈리아의 뜨거운 햇살 아래 자라면 맛이 없겠어...싶긴 하지만요. 

그 사이에 테이블을 치우고, 손도 씻고, 그릇도 준비하고요. 설거지도 할 수 있어요. 고기와 토마토 소스 향이 온 집안을 뭉게뭉게 채우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설레기도 하고요. 30분 정도 끓이고 나서 뚜껑을 열어봅시다. 미트볼이 조금 작아졌나요? 소스의 색은 조금 누렇게 변했구요? 그럼 간을 해봅니다. 휘뚜루 마뚜루 제 입맛에 맞춰서 이것저것 조금씩 넣었어요. 음 적당하다 싶으면, 약불로 그대로 익히면서 면을 삶아봅니다.

음식의 스타일에 따라 면을 다르게 고르는 편인데요, 이때 아까 설정해놓은 스토리가 도움이 됩니다. 혼자 먹는 파스타를 상상하고 만들었다면 두꺼운 면을 골랐을 것 같아요. 어린이가 있는 식탁이라면 먹기 좋은 푸실리(=숏파스타)를 골랐을 것 같고요! 

그리고 아까 수분을 넉넉하게 넣어둔 덕에 꽤 오래 끓였는데도 불구하고 촉촉하네요. 뻑뻑해서 목이 막히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부드러운 고기랑 면을 같이 먹는 느낌이랄까. 이 맛 정말 모두와 나누고 싶어져요. 정말 맛있는데....이렇게 만들기 쉽고 맛도 있는 메뉴가 정말 잘 없다...

아, 뭔가 빠진 것 같다. 연말 분위기에는 넷플릭스 벽난로가 필요하죠!! 급하게 아이패드를 가지고 와 벽난로 4K 영상을 재생했습니다. 핸드폰으로는 캐롤을 은은하게 틀고요.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벽난로를 바라보며 캐롤을 듣고, 미트볼파스타를 먹고 있자니...미국에서도 이렇게 안할 것 같다....싶은 느낌이 들지만, 뭐 내맘이지! 하면서 한껏 연말 무드를 즐겨보았어요. 크리스마스 식사에 큰 관심 없다고 해놓고, 제일 진심이었던 것 같네요 호호. 

더불어 그냥 시판 토마토소스를 사용해도 괜찮아요. 저는 폰타나 제품과 하인즈 제품이 좋더라구요. 다만 시판 제품을 사용할 경우 물을 조금 넉넉하게 넣고 끓이는 것이 좋아요. 시판 소스는 하나가 약 700ml니까 2개만 써도 충분합니다. 

동지가 지나 이제 밤이 짧아진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둠은 조금 빨리 찾아옵니다. 오늘은 약속과 약속 사이에 선잠이 들었어요. 분명 아직 해가 떠있을 때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니 세상 짙은 어둠 속입니다. 늦잠을 잤나 싶어 핸드폰 화면을 켜 시간을 보니 아직 약속에 늦지는 않겠어요. 그래도 서둘러야지 하는 마음으로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나오니 거실에서 트리가 홀로 느리게 반짝이고 있습니다. 너무 설레는 풍경이라 문간에 기대어 서서 트리를 바라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네요.

아주 어린 시절에요, 아마 초등학교 때. 엄마가 어디에선가 엄청나게 거대한 트리를 사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랑, 동생, 그리고 저 셋이서 (아빠는 주로 회사에 가있었기 때문에) 만드는데도 한참이 걸렸던 아주 큰 트리였어요. 오너먼트를 열심히 골라 달고 맨 위에 천사 인형까지 얹고 나면 완성이 됐었죠. 저희 집은 늘 트리를 창가에 세웠던지라, 창밖에서도 반짝이는 트리를 보며 '우리집이야!' 라고 말할 수 있었어요.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거대한 트리를 꺼내서 꾸미던 기억이 참 좋았나봐요. 중학교때 이후로는 트리를 거의 꺼낸 적이 없는데 아직도 이렇게 선명하게 생각이 날 정도면요.

맨날 넘어져서 무릎까진 채로 돌아다니던 초등학생의 저부터, 지금의 저까지, 20년이 넘는 순간의 저와 함께해준 이 트리가 앞으로도 저와 오랜 시간 함께하며 또 많은 추억을 쌓아주기를 바라며.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