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크리에이터 트랙에 선정된 후에 '온보딩'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뉴스레터 크리에이터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지...하면서 들어가서 제가 제일 신났었던 것 같아요. 다른 작업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맞아맞아! 나도 그랬어!' '저런 고민을 하게 되는구나' '저런 방향도 있구나' 같은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감사히 얻은 기회를 통해 다른 창작자들을 만나고 소개해보고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저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요, 프리랜서가 되면 사람을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좁아진달까요? 일을 하느라 바쁘다 보니까 업무와 관련된, 동종업계 사람들만 만나게 되더라구요. 저만 그런줄 알았는데, 다른 프리랜서들도 다 마찬가지의 상황이었고...그렇다 보니 다른 작업자들을 만날 기회가 정말 적습니다. 그래서 크리에이터 온보딩 프로그램이 특히 제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왠지 음식에 진심인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 분께 바로 DM을 드려보았습니다. (실제 메시지는 또 메일처럼 구구절절했으나 중요한 부분만 빼보았어요 😏) 

후삼님은 요리를 전공하지는 않았습니다. 요리와는 거리가 먼 사회학을 전공했죠. 하지만 군대에 다녀와서 친구들이 모두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때가 아니면 해보고싶은 것들을 해볼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SK뉴스쿨에서 1년간 요리를 배웠습니다. 1년동안 요리를 배우고 나서 다시 취업에 나설 예정이었죠. 하지만 막상 1년간의 수업이 끝나자 아쉬워졌다고. 조금 더 해보고싶은 마음에 권숙수라는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주방에서 요리사로서의 일상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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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터를 보내는 저는 '🦈 나영'입니다. 

 

🦈 나영: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후삼님 이번 가을에 뭐 드셨어요? 

 

🍁 후삼: 저는 새우와 게를 먹으면서 이번 가을을 시작했어요. 지금 집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거든요. 거기서 새우를 구워먹었고, 가리비도 맛있게 먹었어요. 게는 약간 매콤한 스타일의 보일링크랩 요리로 만들어 먹은 기억이 나네요.

 

🦈 나영: 역시 먹을 줄 아는 분이다 싶은 답변이네요. 올해 새우가 유독 저렴했던 것 같아요. 저도 두번 정도 사먹었거든요. 가을인가 여름인가 긴가민가 하던 와중에도 새우를 보니까 계절이 바뀌었구나 싶더라고요. 계절을 느끼는데 식재료나 음식만한게 진짜 없는 것 같아요. 

 

 

🍁 후삼: 저도 가을치고 감이 늦어진다는 생각 했어요. 귤도 늦어지는 것 같고..양상추도 난리잖아요 지금? 과일 철이 바뀌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요. 

 

🦈 나영: 씁쓸한 일이긴 해요. 여름에 비해 가을이 유독 짧잖아요. 그런데 먹어야 할 식재료는 많고! 안그래도 가을 식재료들은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짧은데, 제철인 시기가 밀리거나 바뀌니까 더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기다리게 돼요. '언제 나오지? 추워지면 못먹는데' 하면서.

 

 

🦈 나영: 아 근데 저는 올해 배를 참 맛있게 먹었어요. 명절에 나오는 큰 배도 맛있었고, 마트에서 파는 작은 사이즈의 배도 참 맛있었던 것 같아요.

 

🍁 후삼: 배는 물기가 많으니까 반으로 갈랐을 때 딱 그 단면이 반짝반짝 하잖아요. 그게 정말 너무 예뻐요.

 

 

 

 

 

🦈 나영: 맞다, 배숙이 있죠. 저는 배숙을 처음 본게 고등학교때에요 😂 그 왜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품목이잖아요 배숙이. 배 썰어서 통후추 박아야 하는데 끓이는 동안 통후추가 빠져나오면 안된다는 그거!

🍁 후삼: 아 기억나요! 이걸 누가 해먹나 싶은데 심지어 맛있지도 않아요 그거 😑 제가 먹었던 배숙이랑 너무 달라서 배신감 느꼈었다니까요. 진짜 배숙은 그런 맛이 아닌데!

 

🍁 후삼: 배숙이 궁중요리답게 손이 참 많이 가잖아요. 배 속을 숟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파내고, 그 안을 얇게 편으로 썬 생강에, 꽃대추, 계피, 꿀로 채우고, 또 그 위에 배를 더 얹어서 찜기에 쪄내야 하니까요. 그 음식을 받았을 때 그 정성이 느껴져서 좋더라구요. 특히 어릴 때 집에서 배숙을 먹으면 혼자 오롯이 배 하나를 제가 다 먹을 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어요. 나를 위해 차려진 특별한 음식이니까. 

 

 

 

 

 

 

🍁 후삼: 그러네요? 향신료의 향이 좀 더해진 스파이스드 럼(spiced Rum)을 반샷정도 넣어도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외국에서는 감기가 걸리면 도수가 높은 술을 마셔서 몸에 확 열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응용해볼 법 할 것 같아요.

 

🦈 나영: 후삼님도 술 좋아하시죠.

 

 

가을은 과일과 뿌리채소가 맛있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환절기라 코와 목이 간질간질해지기 쉬운 계절입니다. 배숙은 감기에 걸렸을때 먹기 좋은 부드러운 음식인데요, 궁중에서만 먹던 굉장히 귀한 음식이었다고 해요.

 

오늘은 구구절절하게 쓴 레시피 대신, 후암동삼층집님이 아름다운 영상을 촬영해주셨어요. 이번 레터는 저의 글과 후삼님의 영상이 더해진 컬래버레이션(정말 이 표기법 너무 적응안돼요) 레터였다는 사실! 그럼 저어기 수랏간에서 만들던 바로 그 배숙, 한 번 즐겨볼까요? 나름 이번 뉴스레터 독!점!공!개! 랍니다!

1. 넉넉한 사이즈의 머그컵에 물을 1/3정도 채우고, 꿀이나 설탕을 원하는 만큼 넣습니다. 잘 섞어주세요. (다 녹지 않아도 괜찮아요)

2. 여기에 껍질을 벗긴 후 대충 한입크기로 썰은 배와, 얇게 썬 생강편 2~3개, 그리고 통후추 2~3개를 넣어요. 계피가 있다면 넣어주세요.

3. 머그컵에 랩을 씌우거나 뚜껑을 덮고 3~4분간 전자레인지에서 돌려주세요.

4. 배가 반투명해지지 않았다면 2분정도 더 돌려주세요.

5. 그대로 숟가락으로 폭폭 퍼먹어주세요. 

조선시대 수랏간 사람들이 알면 기절할 레시피지만 시대가 변했으니까~ 올해 감기를 예방한다는 느낌으로 도전해보세요. 마침 배가 정말 끝물이라 할인을 많이 하니까 이 타이밍을 놓치지 마세요! 😜

우리를 찾아온 계절을 즐기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어요. 음식을 통해서 즐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음악, 때로는 꽃, 때로는 이불 같은 것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며칠 전에 묵직한 겨울 이불을 꺼내고, 얇은 여름 침구를 세탁하며 가을을 맞았답니다.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은, 그 마음으로 많은 곳에 관심과 애정을 두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문득 후삼님은 어떤가 궁금해서, 이번 계절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꾸미는 것을 좋아해요. 공간을 꾸미기도 하고, 옷차림을 통해서 저를 꾸미기도 하고요. 패션에 관심도 많은 편이구요 😉 그래서인지 계절이 바뀌면 옷차림을 바꿀 생각에 조금 설렙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파자마가 계절의 변화를 정확하게 느끼게 해주는 아이템인 것 같아요.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요. 전신을 다 감싸주는 옷이고, 내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공간에서, 자주 입는 옷이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파자마를 바꿔 입으며 계절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파자마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지만요. 😂

매년 이맘때쯤 리추얼처럼 새 파자마를 사는데요, 해마다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이 제 마음속에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유니클로가 스포티하고 편한 느낌이라면, 무인양품은 감성적이고 촉감이 좋죠. 올해는 무인양품이 제 지갑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두껍지 않은 부드러운 소재의 무채색의 체크무늬 파자마를 집으로 모셔왔죠.

 

파자마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번 계절에는 어떤 일들을 함께하게 될지 상상해보았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좋은 일들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파자마를 입고 따뜻하게 보낼 가을과 겨울이 정말 기대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