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끝, 여름의 붉고 진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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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23.

7월의 끝, 여름 토마토는 탄탄한 근육이 매력적이죠

잘 지내셨나요?

한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대충 있는 것으로 '떼우는 것'에 가까운 식사를 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몹시나 헛헛해져서 마트에 갔습니다.

저희 동네 마트는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과일 매대를 배치해두었어요. 무엇을 사려고 해도 과일 매대를 지나쳐야 해서인지 꼭 갈때마다 예정에 없던 과일을 하나씩 집어 나오곤 하죠. 과일 매대를 보니 역시 여름인지 한층 다채로웠습니다. 천도복숭아의 새콤한 향이 코끝을 스치고, 날이 갈 수록 커지는 수박 옆에서는 진한 색의 피자두의 단 향도 나고, 아삭한 청사과도 나왔더라구요. 하지만 역시 제 발길이 머무는 곳은 붉은 토마토들 앞이었습니다.

*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저희 동네 마트일리가 없죠. 사실 마트 가서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생업이 바빠 레터 발송 전날에 마트에 가지 못했읍니다...대충 자료화면 느낌으로, 아름다운 스페인의 시장 토마토 사진(2018作)을 감상해주십쇼

크기는 작지만 과육이 단단하고 맛이 진한 마틸다 토마토*, 속까지 붉고 당도가 높은 완숙 토마토, 껍질이 얇고 육질이 단단한 찰토마토, 한입에 쏙 들어가는 대추 토마토와 스낵토마토까지. 토마토만 한 매대 가득입니다. 여름의 해를 받아 붉게 익은 토마토들은 역시 아름다워요.

* 마틸다 토마토는 이탈리아산 캄파리 토마토의 한국 이름이에요. 당도가 높고 과육이 단단해 샌드위치에 사용하기 좋습니다.

어떤 것을 고를까 한참을 고민하다 제 주먹보다 훨씬 큰 완숙 토마토를 골랐습니다. 싱그럽고 풋풋한 토마토 향이 품안에 머무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토마토를 끌어안고 집으로 걸어왔어요. 문제는 제가 분명 토마토를 살 생각이 없었다는 거죠. 사실 대파를 샀어야 했는데, 집에 와서야 제가 대파는 까맣게 잊고 토마토를 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아.. 이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운.명. 이라는 것인가.... (#아냐)

여름 토마토를 먹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죠

토마토 샐러드, 샌드위치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바삭한 바게트의 단면에 마늘과 토마토를 으깨듯 발라 먹는 스페인의 판콘토마테(pan con tomate)도 떠오르고요. 사실 정말 맛있는 토마토에는 좋은 올리브오일과 소금을 올리는 것 만으로도 충분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역시 신선한 토마토 소스를 끓이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토마토는 이탈리아의 토마토에 비해 맛이 연한 편이라 소스를 끓이기에는 조금 아쉬운 감이 있어요. 그래서 원래는 산마르지아노 품종의 토마토로 만든 홀토마토 캔으로 토마토 소스를 만드는데, 여름의 완숙 토마토라면 꽤 맛있는 토마토 소스를 만들 수 있거든요.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 소스를 포모도로(pomodoro) 소스라고 하는데, 저는 이 소스를 이용한 파스타를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너무 단순한 메뉴라 그런지 레스토랑에서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름마다 토마토 이 특별할 것 없는 토마토 소스를 끓이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만든 토마토 소스의 맛과 시판 토마토 소스는 아주 다른 맛이기 때문에, 역시 포기하기 어려워요. 아예 먹어보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는. 바로 그런 맛이니까요. 달고, 새콤하고, 감칠맛이 가득하고, 따뜻하고, 설레는, 그런 맛이에요.

* 비주얼은 마치 라잌 지옥의 홍탕이지만, 잘 익어가고 있는 토마토 소스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게다가 토마토만 맛있다면 토마토 소스를 만드는 일은 정말 간단합니다. 가장 귀찮은 것이 토마토 껍질을 벗기는 일 정도랄까요? 사실 그나마도 내가 먹을거라면 건너뛰어도 됩니다. 아, 이러다간 왠지 토마토 소스를 만드는 방법을 다 말해버릴 것만 같네요. 진정하고, 자세한 레시피는 아래서 소개할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토마토소스만큼 맛있는 다른 요리거든요.

보통은 토마토 소스를 만들어서 바로 파스타를 하는데, 이번주에는 냉장고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오신 덕분에 새로운 요리를 하게 되었어요. 이 누추한 집에, 호박꽃이라는 귀한 분이 와주셨거든요.

이탈리아에서는 여름에 호박꽃 속에 치즈를 넣고 튀겨먹는대요. 어릴때 어떤 책에서 그 요리에 대해서 보고 평생을 궁금해했어요. 호박꽃을 먹는다니? 호박꽃 안에 치즈를 넣어 튀겨낸다니? 상상만 해도 설레는거에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꼭 여름의 이탈리아에 가서 호박꽃튀김(fiori di zucca)을 먹어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보통은 리코타 치즈를 넣어 튀기는데, 왜인지 제가 어릴때 보았던 호박꽃 튀김에는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가고, 토마토 소스를 푹 찍어 먹더라고요. 호박꽃에 토마토소스라니, 여름+여름 의 조합이잖아요. 그래서 꼭 해먹어보고 싶었어요.

호박꽃은 암꽃과 수꽃이 있는데, 열매는 암꽃에서만 맺힌다고 해요. 그래서 수꽃을 따서 팔 수 있는 것이죠. 사실 한국에서도 3년 전 즈음부터 호박꽃이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어요. 덕분에 곳곳에서 호박꽃 요리를 찾아볼 수 있게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왜인지 제가 상상했던 튀김을 파는 곳은 잘 없었어요. (지금은 압구정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타르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이닝 레스토랑을 위주로 유통된 탓에 일반 소비자인 제가 호박꽃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작년에도 호박꽃을 찾아헤매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말았죠. 그런데 올해는 감사한 분이 큰 마음을 써주신 덕분에, 이 요리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드려요 💓

이탈리아어로 레시피를 몇 개 검색해보니 호박꽃 튀김에도 여러가지 베리에이션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 중에서 모차렐라 치즈 & 프로슈토 & 이탈리안 파슬리가 들어간 버전과 모차렐라 치즈 & 앤초비가 들어간 버전의 튀김을 만들었어요. 생각만해도 짭쪼름 한 것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그 맛이 생각나 침을 삼켰습니다. 호박꽃의 수술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그 사이에 치즈 소를 꼭꼭 채워넣었습니다. 그리고 얇은 튀김옷을 입혀 뜨거운 기름에서 튀겨냈어요.

그 사이에 토마토 소스는 센불에 졸여서 파스타용보다 조금 더 빡빡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디핑소스로 쓰려면 점도가 있는 편이 좋으니까요. 호박꽃 튀김은 잘 튀겨내도 몰랑몰랑합니다. 아무래도 소도, 꽃잎도 단단하지 않아서 그런가봐요. 토마토소스를 미리 그릇에 담아두고, 튀김을 빠르게 꺼내 기름기만 털어낸 후 그릇에 올렸습니다.

빠르게 자리에 앉아서 뜨거운 호박꽃 튀김을 베어물었습니다. 튀김이 너무 빨리 식어버릴까봐 에어컨조차 켜지 않았어요. 부드럽고 짭조름하고, 맛있어. 향긋하고. '아, 여름의 맛이다' 싶어지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토마토 소스를 찍어먹으니 그 감칠맛이 또 이루 말할데가 없었고요. 와인을 딸 겨를도 없어서 급하게 탄산수를 꺼내와 벌컥벌컥 마시고, 쉬지도 않고 호박꽃 튀김을 해치웠습니다. 행복해.

행복하다는 감정은 이렇게 계획하지 않은 아주 짧은 순간 우리를 찾아오나봐요. 그런 순간에는 왠지 꼭 입밖으로 말을 꺼내봅니다. 생각일 때와 다르게, 말이 소리가 될 때는 어떤 힘이 생겨나는 법이니까요. 이 순간을 조금 더 붙잡아두고 싶은 욕심에 말에 조금 더 힘을 담아봅니다. "행복하네."

그리고 왠지 오늘은 이 문구가 꼭 어울릴 것만 같아요.

여름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엄연히 토마토 소스죠

'달고, 새콤하고, 감칠맛이 가득하고, 따뜻하고, 설레는,' 토마토 소스를 함께 만들어보아요. 이 토마토 소스는 만능인데요, 일단 만들어서 당장 먹을 것은 냉장고에, 나중에 먹을 것은 1회분씩 소분한 후에 냉동해두면 좋아요. 팬에 올리브오일과 다진마늘을 넣어 볶은 후 토마토 소스+면수 조금을 넣어서 바르르 끓인 후 삶아둔 면을 더해 볶으면 토마토 파스타가 완성되고요. 조금 더 끓여 물기를 제거해 빡빡한 상태로 만들면 피자소스로도 쓸 수 있고, 감자칩이나 나초칩을 찍어먹으면 아주 사치스러운 맥주 안주가 되기도 합니다.

아, 이 레시피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적당히 자신의 눈대중으로 가감해도 괜찮은, 그런 휘뚜루마뚜루 레시피랍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발사믹 식초! 전에 모 셰프님이 알려주신 비법이랍니다. 끈적한 발사믹 크림이 아니라, 시큼한 발사믹 식초에요!

완숙토마토 3개

양파 1/4개

올리브오일 4T

월계수잎 1장 (생략가능)

레드와인 100ml

육수 500ml (뜨거운 물+큐브육수* 1개)

소금 · 설탕 · 발사믹식초 · 버터

1. 완숙토마토에 칼집을 낸 후 뜨거운 물에 데쳐 껍질을 벗겨냅니다.**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대충 썰어서 물컹한 씨와 꼭지, 그리고 불투명한 흰색의 심지를 제거해주세요.

2. 손질한 토마토를 믹서에 넣고 갈아줍니다. 아주 잘 익은 토마토라면 볼에 넣고 손으로 쥐어가며 거칠게 으깨기만 해도 됩니다.

3. 양파를 다집니다.

4. 냄비를 중불로 달군 후, 올리브오일과 다진 양파를 넣고 볶습니다. 양파가 불투명해지면 토마토를 넣고 볶아줍니다. 점점 토마토의 색이 핑크색에서 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이 보일거에요. 그러면 월계수잎과 육수, 레드와인을 넣고 약불로 천천히 졸여줍니다.

5. 토마토 소스가 진한 붉은 색을 띠고, 애니메이션 속 마녀의 수프처럼 기포가 올라오면 불을 끄고 간을 할 준비를 합니다.

6. 토마토 소스의 간을 할 때는 과감해야 합니다. 설탕과 소금, 발사믹 식초를 과감하게 넣으면서 내가 원하는 정도의 당도와 산도, 그리고 염도를 맞춥니다.

너무 짜다 -> 토마토 간 것/설탕 추가

너무 시다 -> 설탕 추가

너무 달다 -> 소금 추가

7. 간이 다 됐으면 중불에 올리고 화르륵 한 번 끓여줍니다. 끓어오르면 바로 불을 끄고, 버터 1T~2T***를 넣고 녹여서 마무리합니다.

* 큐브육수는 형태가 다양한데, 사방 1cm정도의 정방형의 제품이라면 1개를, 그보다 넓은 사이즈라면(ex. 칼노트 치킨 스톡) 1/3개를 사용해주세요. 비건의 경우 채수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 토마토 껍질 정도는 먹어도 된다고 하시면 안벗겨도 괜찮습니다.

*** 비건이라면 버터는 생략 가능합니다. 대신 올리브오일을 넣으세요.

**** 여름을 제외한 다른 계절에는 홀토마토캔을 사용해주세요.

***** 쉽다고 했으면서 막상 읽어보니 어려워 보인다고 생각한 분들 분명 있을거에요? 하지만 저를 믿고 따라와보세요 진짜 어렵지 않아요...글자로 쓰니까 어려워보이는거지....진짜에요 믿어주세요 밥로스 스타일의 참 쉽죠? 아니고 진짜 쉬운데 😢

오늘의 술 🍸

오늘의 술을 한참 고민하다가, 역시 여름의 술은 진토닉(Gin Tonic)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토마토 하면 저는 스페인을 떠올리는데,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진토닉을 정말 많이 마시기도 했고요. 지금 제 술창고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와인이 아니라 진(Gin)입니다.

진토닉은 말그래도 진과 토닉워터를 섞어 만드는 술이에요. 아주 간단하죠. 진은 주니퍼베리와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을 넣고 증류하는 고도수의 스피릿인데, 칵테일의 베이스로 다양하게 이용되는 술이에요. 진 베이스의 다양한 칵테일 중에서도 진토닉은 달콤 쌉싸름한 맛이라 청량함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 진 45ml + 얼음 + 레몬/오렌지 한 조각 + 그리고 토닉워터

재료는 이게 다에요. 헨드릭스 진을 사용한다면 오이를 조금 넣는 것이 달라지겠죠? 드라이진은 어떤 것이든 무방해요. 평소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진은 십스미스(SIPSMITH)지만, 이날 저는 친구가 미국에서 사다준 특별한 진을 사용해봤어요. 병이 너무 예뻐서 맛은 묻지도 않고 사다달라 부탁했던 진인데, 랍상소우총(gun powder tea)이 들어가 진토닉에 아주 잘 어울려요.

마음에 드는 잔에 진을 붓고, 토닉워터를 부어줍니다. 캐나다드라이의 토닉워터도 좋지만 저는 피코크의 토닉워터를 좋아해요. 전에 제주도의 한 바에서 만난 바텐더님이 알려주신 제품인데, 다른 토닉워터에 비해 earthy*함이 있달까요? 그래서 꼭 이 토닉워터를 상비해놓고 사용하고 있답니다.

* 이 earthy함이 제겐 정말 엄청난 난제에요. 이렇게 맛 표현에 영어 쓰는거 정말 너무 싫어하는데 😭 도대체 답이 없어요. 저걸 그대로 번역하면 흙향인데, 그럼 식욕이 떨어지고...땅의 기운이라고 하자니 신의물방울 같고....하지만 어쨋든 약간 비온뒤 숲에서 느껴지는 기분좋은 흙향 정도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언제쯤이면 이 향을 구구절절하게 소개하지 않게 될까요?

잔에 다 넣고 섞기만 하면 끝인 바로 이 진토닉이 이번 여름의 술입니다. 진은 코스트코에서 싸게 사도 되고, 와인앤모어에도 있고, 남대문 주류상가에 가도 살 수 있습니다. 스피릿 특성상 금방 다 마시지 않고, 또 오래 보관해도 맛이 쉽게 변하지 않아서 가성비가 좋아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주류 소비 패턴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참에 진에도 도전해보시는게 어떨까요? 청량한 여름의 친구가 되어줄거에요.

이번 주에 저보고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으라고, 손해보면서 사는 사람은 바보라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 조금 더 약은 사람이 되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내가 너무 미련한가 싶었는데, 역시 아닌 것 같아요. 주말 저녁에 도착한 호박꽃과, 친구가 미국에서 들고와준 저 예쁜 푸른 병의 진, 지난 수요일에 부러 성수동까지 나와 제 팝업 행사를 찾아와준 분들을 생각하면, 역시 세상 모든 일이 돈과 손익의 논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살면서 받은 호의는, 분명 어딘가에 전달해야하는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잘나서 지금 여기 서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도 누군가에게 마음과 시간을 쓰는 일에 인색하지 않으려고요. 여태까지 그래왔듯이요.

그리고 손해 조금 보면 어때요.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면, 손해 조금 정도야 괜찮지 않겠어요. 저는 조금 손해보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살래요.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맛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두고 손익을 따지지 않고요.

남은 한 주간, 여러분의 식탁에 여름 햇살의 축복같은 붉은 색이 깃들길 바라면서,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비슷한 느낌의 행복을 나눠 가질 수 있길 바라며, 7월의 마지막 레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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