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중간, 그런 날 있잖아요, 어쩐지 술이 땡기는 그런 날.

분명히 양파를 사러 갔는데, 어쩐지 주류코너 앞에서 기웃대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거하게 마시고 싶은건 아닌데, 가볍게 편하게 마시고 싶은 날. "뭐해? 우리집에서 술 한 잔 할래?"하고 말할 수 있는 집 근처 사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날. 하지만 이내 혼자 맥주 한 캔이나, 소주 한 병을 슬며시 사서 집에 들어오게 되는 날.

술을 집어들긴 했는데, 안주가 고민입니다. 저는 과자랑 술을 먹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냉동코너를 기웃거려보아요. 그런데 영....냉동만두를 살까 했더니 1+1이 되어서 양이 너무 많아지고, 피자 같은 양식은 땡기지가 않고요. 동네 분식집에서 튀김을 좀 사갈까 싶어서 마트를 나왔더니 웬걸. 오늘부터 휴가라고 하네요. 되는 일이 없네.

일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희집은 언덕배기에 있는데요, 더운 여름에 언덕을 열심히 걸어올라왔더니 땀범벅입니다. 일단 좀 씻어야겠어요. 별이 간식을 주고, 술을 먼저 냉장고에 넣어서 차갑게 칠링시켜둔 후에, 샤워를 했습니다. 가볍게 미지근한 물로 몸을 씻어내고,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요즘은 날이 습해서 에어컨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잠옷을 입고 침대에 툭 걸터앉으니 "흐어-"하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그나저나 안주는 뭘로 하지? 냉장고를 뒤져봐야 별게 없을 것이 뻔해요. 흠~ 괜히 냉동실 던전을 탐험하겠다고 하면 씻은 땀이 그대로 다시 붙을 것 같고. 아, 이런날은 역시 김치전입니다. 후다닥 부쳐볼게요.

김치전에 깻잎이나 청양고추 등을 넣기도 하지만 저는 김치만 들어간 순정 김치전파입니다. 솔직히 김치전은, 야식으로 후딱 부쳐낼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이니까요! 일단 묵은 김치를 꺼냅니다. 조여사(=엄마=생김치파)는 "이렇게 쉬어버린 김치를 어떻게 먹어?"라고 하지만, 이 김치가 쉬지 않고 묵은지 상태로 머무를 수 있도록 제(=묵은김치파)가 얼마나 관리를 잘 했는데요. 게다가 조여사의 김치는 젓갈이 많이 안들어가는 서울 김치라 익었을 때 시원-한 진면목이 나온단 말이죠.

김치를 꺼내봅니다. 김치전을 할 때는 김치 양이 늘 고민인데요, 한 판 기준으로 큰 잎 2장 정도면 되는 것 같아요. 너무 많으면 또 김치볶음같은 느낌이 되어버리니까요. 볼에 담고 가위로 조사줍니다. 도마에 김치국물 묻으면 햇볕에 말려 지워야 해서 귀찮으니까요.

김치전에 들어가는 김치는 큼직하게 써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사주는 편이에요. 그래서 젓가락으로 주욱 찢었을 때 김치가 한데 뭉쳐서 뜯어지지 않고 골고루 퍼져 있거든요.

김치를 다 조사놨으면 부침가루를 넣어주세요. 김치국물이 있는 상태라 물은 처음부터 같이 넣지 않고요, 일단 섞으면서 상태를 봅니다. 그리고 상태를 보고 물을 조금 넣어줍니다. 저는 간장도 조금 넣어줘요. 얼마전에 아주 작은 거품기(=휘스크)를 샀는데, 너무 마음에 듭니다. 김치전 반죽을 할 때 딱이에요.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김치전의 두 번째 난관이 있다면....반죽입니다. 왜냐구요?   

'보태보태' 증상이 나타나기 십상이거든요 하하 '너무 질은가?' 하고 부침가루를 더 넣고나면 '아 너무 되직한가...?' 해서 물을 또 넣고, 그러고 나면 또 '너무 질은가?'하고....무한반복 하다 보면 김치전 반죽이 무한증식하기 때문이죠 😂 그렇게 '보태보태'하다가 김치전을 3장까지 부쳐야 했던 밤이 있었습니다....오늘은 그래도 한 장만 부치기에 성공했어요!

물론 조금 보태보태 하기는 했습니다만....🙄

예전에 SNS에서 김치전을 도넛 모양으로 부치면 바삭한 부분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배운 이후로, 저는 늘 김치전을 이렇게 부칩니다. 어떻게 이런 천재적인 생각을 했을까요? 역시 인간은, 늘 답을 찾아내는 존재인가봐요! 이 방법을 알아내신 분 누굴까요? 평생 바삭김치전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AMEN. 

김치전을 챳, 뒤집어줍니다. 기름이 좀 있는 상태라 기름이 막 튀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들고서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확 뒤집어줬어요!! 라고 썼지만 사실 반 접혀서 ㅋㅋㅋ 펴줬어욬ㅋㅋㅋ 

아 그리고 김치전을 맛있게 부치는 방법 중 하나는 기름을 넉넉히 쓰는 것. 그래서 뒤집고 나서도 기름을 한 번 더 넉넉히 넣어줍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름을 넣어서 튀기듯 익혀내야해요. 기름이 부족하면 나머지 반절이 축축하게 익거든요. 기름 많으면 느끼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바삭김치전 파인 저는 기름을 아주 넉넉히 두릅니다. 지글지글하면서 튀겨지는 소리가 들리네요.  

그리고 저는 바삭 김치전을 좋아하니 뒤집개로 꾹꾹 눌러서 사이사이의 수분이 더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손이 뜨겁지만 이정도는 참을 수 있죠. 꾹꾹 눌러가며, 마지막으로 바삭함을 더해줬습니다. 살짝 들어서 반대쪽을 확인해보니 노릇하게 잘 익었네요. 아~주 조금 탄 것 같기도 하지만, 좀 타야 맛있는 법이에요. 

불 앞에 있었더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어서, 불을 끄고는 땀을 쓱 훔쳤습니다. 자 이제 그릇에 담아볼까요. 안주가 완성되었으니 술상을 차릴 때에요.

집에 이차저차 술이 많은 사람이지만, 혼자 먹을때 마실 술을 고르는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냉장고를 먼저 열어봅니다. 가장 먼저 와인이 눈에 들어와요. 시원하고 산미가 좋은 화이트와인이 마시고 싶은데, 와인은 750ml라 혼자 마시기엔 너무 많잖아요. 그리고 신기하게 와인은 둘이서 두명은 어렵지 않은데 혼자 한 병은 참 어려운 술입니다. 음 역시 와인은 안되겠어요.

증류주로 칵테일을 만들까? 하고 토닉워터를 찾았는데, 웬걸. 토닉워터도 똑 떨어졌습니다. 탄산수로 말면 그 맛이 또 아니란 말이죠....휴 칵테일도 안되겠네요. 아, 제가 만든 꿀술이 숙성이 어느정도 된 김에 한 번 마셔볼까 싶어서 보니까 맛이 나쁘지 않네요. 수정과같은 스타일의 꿀술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얼추 비슷한 느낌같기도 하고요? 정했어. 오늘은 자가제조 꿀술을 주안상에 올려보겠어요.

사실 이렇게 술이 마시고 싶을 때는, 고민이, 그렇다고 누구한테 말하거나 조언을 구할 만큼은 아닌 작은 고민들이 있을 때입니다. 아니면 매일매일이 조금 고달플 때. 그렇지만 친구들을 하나 하나 떠올렸는데 다들 지금 각자 힘든 일이 있는 상황이라 기댈 데가 없을 때. 그런 날 저는 조용히 혼자 술상을 차립니다.

구독자님은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저랑 비슷한 마음이 드는 날이 최근에 있지는 않았나요? 

아 일단, 술부터 따를까요? 잔을 비워두면 안되죠. 일단 짠!

아니 그래서요, 제게도 요즘 좀 고민이 있기는 합니다. 사실 고민...이라고 부르기도 거창해요. 프리랜서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그런 생각인데요. 이게 다들 알다시피 고민을 해봐야 답이 없어요. 미래는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한대로 흘러가주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자꾸 버릇처럼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예전엔 저는 직장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는데, 프리랜서로 일을 오래 하다보니까 오히려 직장인도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내가 모든걸 책임질 필요가 없고, 월급이 있는 삶도 안정적이고 좋을 것 같고요. 동료도 있을 거고.

앗차, 전이 바삭할 때 얼른 먹어야죠. 김치전은 가위나 칼로 자를 필요 없이 젓가락으로 주욱 찢어먹으면 되어서 더 좋아요. 칼도 도마도 쓰지 않을 수 있다니 기름묻은 설거지 거리가 줄어드는게 최고죠.

아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요, 제가 직장인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고 하면 직장인 친구들이 굉장히 놀라요. '이 일 재미없어.' '너는 못버틸걸?' 같은 말들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프리랜서도 그렇게 재밌지는 않아요.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요. 구독자님, 이 사회는 '직장인'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 같아요. 직장에 다니면서 부품처럼 여겨지지 않도록 내 일을 해야한다, 셀프 브랜딩을 해야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야한다...회사에서 일하는 것 만으로 바쁠텐데 너무 많은걸 해야하는 것 처럼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나의 부품이 되어서 일하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요. 작은 부품 하나도 없으면 삐걱대잖아요. 오늘 내게 주어진 일을 잘 하는 것 만으로도 직업의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좋아하는 일이 꼭 직업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일단 짠. 한 잔 더 마셔요 구독자님.

참 싱거운 고민이죠? 결론도 없고, 답도 없는 이런 모호한 고민이 저를 괴롭히는 때가 종종 있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동경하면서 살아가게 되나봐요. 저는 직장인을 동경하고, 직장인 친구들은 프리랜서를 동경하고. 종종 그 두가지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내가 만약 프리랜서/직장인 이었다면?'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겠죠.

그리고 그 질문에는 숨겨진 마지막 부분이 있습니다. '그랬다면 행복했을까?' 하지만 그런 의문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만약에'는 정말 손톱 아래의 가시같아서, 의식하기 시작하면 신경을 모두 갉아먹는, 그런 재주가 있는 단어잖아요. 어쩔 수 없죠. 프리랜서에게는 프리랜서만의 기쁨과 슬픔이, 직장인에게는 직장인만의 기쁨과 슬픔이 있는거고, 우리는 그냥 모두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할 뿐이에요. 매일매일, 별다른 사건사고가 없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다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쇼핑을 하거나, 여행을 가면서 스트레스를 조금 풀어주고요. 직장인도 프리랜서도 둘다 매한가지입니다.

저는 이야기를 하면서 야금야금 김치전을 먹었는데, 술이 조금 남았어요. 구독자님, 마지막 잔은 샤워를 당한 별이와 함께 보냅니다. 짠. 마지막 잔을 털고,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에라 모르겠다~ 인생 뭐 별거 있냐~ 배부르고 기분좋으면 그만이지! 하고 가벼운 샤워를 한 번 더 하고, 이를 닦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봅니다. 

아 에어컨 꺼야 하는데. 흠. 오늘은 그냥 조금 사치스럽게, 에어컨을 틀고 잠들게요. 이런 사치 한 번쯤 부려도 되죠! 열심히 일했으니까! 하지만...추우면 일어나서 끄죠 뭐. 히히 구독자님 고민을 들었어야하는데, 제 넋두리만 한 느낌이네요. 그런데 저 잠이 와요. 그럼 이만 8월의 첫 번째 레터를 마칩니다. 구독자님, 좋은 밤 되세요. 월요일에 말복이니까 꼭 복날음식 챙겨먹구.....안녕.....

인생은 간단해, '일단 하고, 결과와 마주해라.

솔직히 말해서 ‘만약에 그랬다면?’ 하고 평생 사는 것보다는 나아. 난 그런 의문이 끔찍이도 싫어.

넷플릭스 쇼 <마사바와 마사바 (시즌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