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산미가 있는 과일보다는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은 과일(=예를 들어 복숭아라거나 복숭아라거나...)을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요, 귤 만은 예외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귤은 그냥 무조건적 사랑을 받는 존재랄까요? 

하지만 이제 제겐 그때보다 여유가 조금 더 있으니까요! 후다닥 비행기표와 숙소, 그리고 렌트카를 빌려놓고 제주도에 갈 날만을 기다렸어요. 뭘 먹을지 고민하는게 가장 큰 일이었지만! 후후 저는 언제나 맛집 리스트를 쥐고 있는 사람으로서, 추려내는 일만이 어려웠을 뿐이죠. 집을 이틀 비워야 하니까, 별이를 봐줄 다른 친구를 섭외하고, 여분의 마스크를 챙기고 제 마스크도 단디 쓰고 제주도로 향했어요.

설명을 들으면서 귤을 보니까 생각보다 이미 저보다 먼저 맛본 사람이 있는 귤이 많더라고요! 범인은 새🐦! 맛있는 귤을 제일 먼저 따먹는 친구들이더라고요. 바깥쪽 귤 뿐만 아니라 나무 꽤 안쪽의 귤도 많이 따먹었던데, 부지런해....새에게는 제일 맛있는 것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거겠죠? 제일 맛있는 귤을 어떻게 고르는 것인지 너무 궁금했어요. 솔직히 새가 먹은 귤 진짜 맛있나 싶어서 먹어보고 싶었는데 너와 나 모두의 위생을 위해 참아보았습니다....히히

아 귤나무 가지를 자르니 귤 향이 나더라고요! 같이 간 친구도 귤나무 가지에서 나는 향에 놀랐어요. 시트러스계열의 과일들은 잎에도 특유의 향이 배어있는데, 태국에서는 라임나무 잎도 요리에 쓰거든요. 향이 가지에도 배어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어요. 아, 찾아보니 오렌지 나무 잎도 종종 요리에 쓰인대요. 뱅쇼나 뮬드와인을 만들 때 잎을 잘라 넣기도 한다고. 귤나무 잎으로 차를 끓여도 재미있는 맛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 노지 귤에는 극조생과 조생이 있는데, 저희 농장의 귤은 조생이에요. 우리가 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온주밀감'이고, 저희 농장에는 그 중에서도 흥진과 궁천 품종의 귤이 자라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는 두 개를 분류할 수 없는데, 어르신들은 과수의 잎만 보고도 아시더라고요 (웃음) 하나 드셔보시겠어요?

후숙이 조금 된 귤을 손수 까서 쥐어주셔서 또 거절 않구 신나게 먹어보았는데, 단맛과 신맛의 밸런스가 얼마나 좋던지 기분좋아지는 신맛이었습니다. 영어로는 신맛을 설명하면서 'refreshing(기분전환이 되는)' 이라는 표현을 많이 붙이는데, 딱 정말 그런 맛이었어요. 기분이 상쾌해지는 맛이요. 귤 향기가 가득한 귤밭에서 먹어서 더 그랬을까요 😌  

"요즘 귤철이라, 배송이 1~2일 정도 더 걸릴 수 있어요!"

어찌되었든, 집에 도착한 귤을 어떻게 먹는게 좋을까, 고민을 한참 해봤어요. 뭐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은 있죠. 오렌지를 넣는 요리에 귤을 대체해서 넣으면 되니까, 귤 카라멜 소스를 넣는 크레페(=크렙 수제트)도 있고, 귤 소스를 곁들인 돼지고기/닭고기 요리도 있구요. 하지만 솔직히 귤은 먹기 쉬운 것이 포인트인 과일이잖아요? 손으로 그냥 슥슥 까서 입에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데 굳이 어렵게 요리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아주 간단하기 때문에 레시피는 따로 없구요! 얇은 크래커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귤을 까서 올리면 돼요. 마스카포네도 정말 잘 어울리는데요! 하지만 집에 마스카포네 치즈가 있는 사람이 몇 이나 있겠어요...* 그냥 크림치즈로 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 귤을 토치*로 지져서 살짝 탄+고소한 맛을 내주는게 포인트! 강한불로 지져서 가볍게 태워주면 돼요. 

이 타이밍에 '아 나는 토치 없는데...' 싶은 분들 분명 있으시다~ 제가 다 안다~ 그럴 때는 그냥 가스레인지나 부루스타(버너) 불을 켜고, 귤을 젓가락 끝에 꽂아서 마시멜로우 굽듯이 살짝 구워서 올려주세요. (하지만 라이터는 안돼요!) 

커피도 좋지만, 좋아하는 다구와 좋아하는 잔을 골라서 따뜻한 물로 차를 우려서 마시는 일이 참 제 기분을 좋게 해줘요. 차를 아주 잘 다루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정성껏 내립니다. 어떨 때는 작은 찻주전자일 때도 있고, 어떨 때는 개완일때도, 어떨 때는 머그컵에 티백을 넣기도 하고요. 오늘의 메뉴인 귤 카나페와 겨울에 어울릴 따듯한 것이 커피나 핫초코말고 무엇일지, 티에리스(Tieris) 정다형 대표님께 여쭤보았어요.

귤은 우리가 겨울에 쉽게 즐기는 과일이지만, 사실 차와 곁들이기에 쉬운 과일은 아닌 편입니다. 산미가 있는 시트러스류 과일들이 대부분 그래요. 특히 홍차에 들어있는 폴리페놀 성분(=쓴 맛을 내는 성분)이 산과 만나면 텁텁한 맛을 내거든요. 그래서 덜 떫고 부드러운 맛이 나는 차와 매치해야 합니다. 

그래서 잭살차가 딱 어울리는 차라는 생각이 드네요. 참새의 혀를 닮은 한국의 차인데요, 하동이 원산지로 약으로도 차로도 쓰였던 차라고 해요. 고소한 맛과 함께 말린 살구나 잘 익은 홍시의 달고 부드러운 풍미가 감도는 단정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쓴맛이나 떫은맛이 없고 달곰한 풍미가 있고, 이따금 콤콤한 향기가 돌기도 해서 치즈와 딱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귤을 넣은 크림치즈 타르트에도 아주 잘 맞을 거예요.

전통적으로는 잭살차에 유자 껍질이나 대추를 넣어서 끓이기도 해서, 귤을 까먹고 남은 껍질을 같이 넣고 끓여먹어보세요. 귤의 향기와 고소한 잭살차의 맛이 보드랍게 잘 어울릴 거예요.